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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눈감은 국립묘지

2026.06.286

■ 현충원에 묻힌 그들

1980년 5월 19일 광주.
탱크와 장갑차가 시내를 점령했고, 공수부대가 투입됐습니다.

무자비한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던 그날 오후.
계엄군이 처음으로 총을 쐈습니다.

그때 총탄을 맞고 쓰러진 건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김영찬 씨였습니다.

◀ I N T ▶ 김영찬 / 5·18 첫 발포 피해자
"(친구들이) ‘영찬아 빨리 와라. 무섭다’ 그러고 해서 알았다고 뛰어가는데 다시 한번 총소리가 따다다닥 나더라고요. 이렇게 뒤돌아보는데 아스팔트에서 불이 파바박 튀는 걸 봤어요. 그 순간 갑자기 하체 힘이 쭉 빠지는 거야.“

총탄은 손목과 하복부를 관통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7번의 수술 끝에 살아남았지만,
46년째 극심한 후유층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 I N T ▶ 김영찬 / 5·18 첫 발포 피해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개복을 해서 7번 수술을 한 거죠. 내 사지를 이렇게 침대 난간에 묶고 학교 친구들 불러서 한 10명이서 제 몸을 이렇게 누르고 입 틀어막고 막 생살을 이렇게 수술을 했어요.“

교복을 입은 김 씨에게 총을 쏜 건
장갑차에 타고 있던 11공수여단 소속 차정환 대위.

그는 닷새 뒤인 5월 24일,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 간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차 대위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공적 조서엔 오인 사격 사망이 아닌,
"사태 진압을 선두에서 지휘하던 중 불의의 흉탄에 맞고 순직했다"고 돼 있습니다.

김영찬 씨에게 총을 쐈던 그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있습니다.

◀ I N T ▶ 김영찬 / 5·18 첫 발포 피해자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묘지에, 국립묘지에 못 묻히고 그냥 어디 아무 데나 버리고 막 그랬었는데 (나를 쏜 사람이) 국립묘지에 묻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천불 나지만 어쩌겠어요?“

◀ 신준명 기자 ▶

국립현충원.
구한말 의병부터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 전사한 국군장병,
그리고 순직한 경찰과 소방대원 등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과거 친일·반민족행위나, 민간인 학살 등에
가담한 인물들까지 안장되면서 논란이 반복돼왔는데요.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유혈 진압에 책임이 있는 이들 다수가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헌정 파괴' 가담자도 안장

1979년 12월 12일.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과 그 일당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 12.12 군사 반란

◀ S Y N ▶ 영화 <서울의봄> 中
"반란군은 들어라!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라!“

영화 <서울의봄>에서 반란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참군인 이태신 사령관은 실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을
모델로 했습니다.

◀ S Y N ▶ 장태완 / 당시 수경사령관 - 이건영 / 당시 3군 사령관(12‧12 반란 당시 통화)
"<사령관님께선 바깥에서 잘 해주십시오.> 알겠어요. <저는 안에서… 다 죽이든 이놈의 XX들 다 해버릴 테니까…>“

반란군에 협조하지 않은 결과 그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 했고,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한 뒤 강제 예편당했습니다.

반란군에게 체포되는 아들을 보면서, 그의 부친은 화병으로 숨졌고,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던 아들은 실종된 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지난 2010년 사망 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장태완 장군.

그런데 바로 옆자리에 묻힌 인물은 정도영 전 보안사 보안처장입니다.

정도영은 장태완 장군 등 반란군을 진압하려던 세력의 통화를 도청해
전두환 측에 전달했던, 즉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핵심 인물입니다.

장태완 장군은 생전에 반란군들과 함께 장군 묘역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어서도 피하고 싶었던 상황은 결국, 현실이 돼 버렸습니다.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던 참군인이,
그 반란군의 바로 옆에 묻히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겁니다.

◀ I N T ▶ 정성일 / 전 5·18 진상조사위 전문위원
"(정도영과) 사망 일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장태완 장군이) 바로 옆에 들어가신 거죠. 그것이 또 다른 비극을 낳고 있는 거죠.“

광주에서 계엄군의 유혈 진압이 진행 중이던 1980년 5월 22일.

당시 22살이던 이성순 씨는 퇴근하다 계엄군을 목격한 뒤,
지인의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 있다 창을 뚫고 날아온 총탄을 오른쪽 가슴에 맞았습니다.

여러 번의 수술 끝에 살아남았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총상으로 인한 납중독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I N T ▶ 이성순 / 5·18 총상 피해자
"안 아프고 하루나 살다 죽게 수술 좀 해달라고 그 원장님한테 그랬더니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된대요.  (파편이) 너무 작고 많아서 할 수가 없대, 제거할 수가…“

당시 임신 3개월 차 주부였던 이지윤 씨.

집안에서 쉬던 도중, 날아든 총탄이 눈 옆과 귀를 관통했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광주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수사관들에게 끌려가
마구 구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 I N T ▶ 이지윤 / 5·18 총상 피해자
"(당시 수사관들이) 이 X이 폭도면서 임산부라고 거짓말한다고 때리기 시작했어요. 각목 그 두꺼운 걸로. 저는 아니라고 집에서 가만히 있다 총 맞았다고 하니까 거짓말한다고 때리고. 또 울면 운다고 눈구멍 파버린다고 때리고 발로 지근지근하고…“

이성순 씨와 이지윤 씨에게 총격을 가한 계엄군은 광주 외곽 봉쇄,
국군광주병원 확보작전에 투입된 육군 20사단이었습니다.

당시 육군 20사단장은 박준병 소장.

육사 12기, 전두환과 노태우의 한 기수 후배로
12.12 군사 반란 당시 30경비단에 모인 반란군 수뇌부 중 한 명이었습니다.

박준병은 당시 국방부에 제출한 '광주충정작전 상보' 문건에서
3명을 사살했다고 적었습니다.

5·18 이후 보안사령관을 맡았고 운동권 학생들을 입대시켜
동료들의 학생운동 정보를 캐도록 한 이른바 '녹화사업'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 S Y N ▶ 이해찬 /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 박준병 / 전 육군 20사단장 (1988년 5·18 청문회)
"<휴가를 내보내서 자기가 다니던 학교에 가서 동향을 파악해 오도록 명령을 내렸단 말이에요. 그것이 군의 전투력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내가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이후에도 대장 진급, 3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승승장구했고
사망 뒤 지금까지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묻혀있습니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뒤 지휘관들을 치하하며
웃고 있는 군인. 소준열 소장입니다.

박준병 20사단장의 상관이었습니다.

소준열은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받고도 진압에 소극적이었던,
전라남북도계엄분소장 윤흥정 중장이 해임된 뒤 그 자리에 임명됐습니다.

그 이후 유혈 진압이 본격화됐습니다.

◀ S Y N ▶ 이해찬 /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 소준열 / 전 전라남북도계엄분소장(1988년 5·18 청문회)
"<광주 시민들을 똘마니니, 폭도니 하면서 껄껄거리면서 웃으면서 증언하는 테이프가 다 제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증인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었습니다.> 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좀 더 설명을 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습니다.“

소준열은 5·18 이후 전두환으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받았고,
사후에 대전현충원에 묻혔습니다.

이들 외에도 광주 유혈 진압 승인 책임이 있는 제2군 사령관 진종채.

역시 광주 무력 진압 책임 라인에 있던 장성,
홍성률 김기석 최예섭도 모두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특히 박준병과 소준열, 정도영 등은 모두 12.12 반란 가담
또는 5.18 유혈 진압 사실이 인정돼 서훈이 취소됐지만,
이들의 유해는 여전히 국립현충원에 묻혀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광주에서 유혈 진압작전을 수행한 최웅 당시 11공수여단장은
서훈이 취소된 이후 6년이 지나 사망했지만, 현충원에 안장됐고,
권승만 7공수여단 33대대장도 서훈 취소 1년 뒤 현충원 장군 묘역에 묻혔습니다.

◀ I N T ▶ 이성순 / 5·18 총상 피해자
"가서 제가 할 수만 있다면 (묘를) 파헤쳐서 나도 자기들한테 총 쏴 버리고 싶소. 그런 심정이야. 나같이 한 번 겪어보고 살으라고…“

12.12 군사 반란 성공을 기념하며 그들이 남긴 사진.

이 사진 속 군인 34명 가운데 최소 13명이
지금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 S Y N ▶정성일 / 전 5·18 진상조사위 전문위원
"반란군이라든지, 내란을 일으킨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영웅으로 모시고 있는 거죠. 이 현충원의 모순을 바로 잡는 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또다시 올바로 잡는 게 아닌가…“

◀ 신준명 기자  ▶

12.12 군사반란과 광주 학살 가담자들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 혹독한 고문 수사로 무고한 민간인을 간첩으로 둔갑시켰던 이들.

취재 결과, 이 국가폭력의 가해자들도
상당수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현행 규정대로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역사' 눈감은 국립묘지

1974년 3월 15일. 중앙정보부는
"울릉도를 거점으로 10여 년에 걸쳐 암약한 북괴 간첩단을 검거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간첩이라는 자백을 받기 위해 혹독한 고문이 있었습니다.

◀ S Y N ▶ 故 이성희 /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 (AI 음성 대역)
"재판이고 뭐고 필요없으니까 그냥 죽여달라고 애원을 했어. 교도소 넘어갔는데 봄철에 얇은 일제 내복을 입었어. 근데 그게 두들겨 맞아가지고 피부에 전부 붙어버려서 벗지를 못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로
2014년 재심이 결정돼 무죄 판결이 확정됐지만,
3명은 이미 사형당했고, 다른 피해자들도 대부분 고문 후유증과
간첩이라는 낙인 속에 힘겹게 살다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 I N T ▶ '울릉도 간첩단 조작' 피해자 유족
"혼수 상태가 7일간 지속돼 있었고 그날이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그때 이제 재심 결정이 됐다 이 소식을 들으셨는데 눈물이 쫙 이렇게 흐르시더라고요. 그로부터 1시간도 안 돼서 돌아가셨죠.“

이 고문 수사를 했던 가해자 장송록.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단장으로,
중정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고 최종길 교수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현재 국립 대전현충원에 묻혀있습니다.

1986년, 재일동포 김순일 씨를 간첩으로 만든 사건 역시 재심 끝에
혹독한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고문수사를 자행한 보안사 수사관 김효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고,
사후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이들 외에도 차풍길 간첩조작사건 수사관 김성규,
여덕현 간첩조작사건 수사관 최동진도 모두 국립묘지인 호국원에 묻혔습니다.

지난 2018년 이후, 간첩조작 사건으로 받았던 서훈은 취소됐지만,
현충원을 비롯한 국립묘지에 그대로 묻혀 있는 겁니다.

◀ I N T ▶ 송상교 / 김순일 씨 재심 변호인, 제3기 진실·화해위원장
"피해자에 대한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한편에서 하면서 한편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이른바 사회적 명예와 관련된 현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건 사실 양립되기 어려운 거고…“

12.12 반란과 5.18 광주 유혈 진압,
그리고 고문 조작 수사 가담자들까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이유는 뭘까?

국립묘지법에 따르면 전사·순직자, 무공수훈자,
군인의 경우 20년 이상 장기복무자, 또 별을 단 장성급 장교는
자동으로 안장 대상이 됩니다.

안장 자격이 박탈되는 사유는 이중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
내란·반란·외환유치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
그리고 살인·뇌물·성범죄 등으로 금고 1년 이상의 형이 확정됐을 때입니다.

12.12 반란이나 5.18 학살, 간첩조작 등에 가담해 서훈이 취소됐어도,
해당 범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확정받지 않았다면
국립묘지 안장에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 겁니다.

12.12 반란 가담자로 기소된 박준병은
'내란의 의도가 증명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현충원에 묻힐 수 있었습니다.

3성 장군이던 당시 12.12. 반란에 가담해 쿠데타 성공 후
안기부장,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유학성은 1심 재판에서 징역 8년,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 상고심 진행 도중 사망했습니다.

즉 형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숨졌기 때문에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 않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기소조차 되지 않았던 5.18 유혈 진압 지휘관들.

역시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고문 조작 수사관들도
법적으로는 국립묘지 안장에 문제가 없는 겁니다.

◀ I N T ▶ 김용만 / 더불어민주당 의원
"헌정 질서를 유린했던 국가 폭력 가해자들마저도 지금 현충원에 안장이 되어 있는 모순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서훈이 취소된다 하더라도 외형적으로 20년 이상 복무를 했다든지와 같은 조건이 부합이 되면 기계적으로 안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겁니다.“

국립묘지법에선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행위가 영예성 훼손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 I N T ▶ 박강배 /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안장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법에서 말하는 법에 따라서만 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안장 배제 대상만 아니면 되는 문제입니다.“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과거 간첩조작 수사 가담 사실이 인정돼 서훈이 취소된
국방부와 국가정보원, 경찰 수사관은 모두 63명.

이중 현재까지 국립묘지에 안장된 걸로 확인된 인물은 5명이지만,
현행법대로면 현재 생존자들도 사후 추가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습니다.

또 현행법상, 이미 국립묘지에 묻힌 이들에 대해선
친일 등 반민족행위나 헌정파괴, 국가폭력 가담행위 등이
아무리 명백하게 드러났어도 유족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장시킬 수 없습니다.

◀ I N T ▶ 박강배 /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안장 기준에 사회적 평가와 역사적 평가를 두어야 되고 즉시 평가할 일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평가하고 이미 안장된 사람에 대해서도 이장과 취소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좀 뚜렷해야 된다고 봅니다.“

1939년 군사쿠데타로 내전을 일으켜 반대파 국민 수만 명을 처형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전 총통.

그는 1975년 사망 뒤 국립 추모 시설에 안장됐지만, 스페인 정부는
2019년 "독재자, 학살자를 민주주의 국가 추모 공간에 둘 수 없다"며
유족과의 소송 끝에 그의 유해를 가족 묘지로 이장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한 4부 요인,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의 취임 첫 행보는 거의 예외 없이 국립현충원 참배입니다.

그만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집약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심사할 때 역사적 평가를 포함시키고,
심사를 통해 안장 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일.
국립묘지에 영면한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 I N T ▶ 김용만 / 더불어민주당 의원
"간첩조작, 친일파, 그 외에 군사 반란 등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국립묘지에서) 원천 배제가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듭니다.  헌정질서를 유린했던 사람들이라면 안장심사위원회를 통해서 현 안장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안장을 해야되는 소위 말하는 파묘를 해야되는 부분까지도 검토를 해야 된다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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