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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의사’ 우석균

2026.07.127

■ '거리의 의사' 우석균

명품 브랜드 매장과 팝업 스토어로 가득한
서울 성수동.

하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제화와 인쇄, 기계 공장이 빼곡했던
노동자들의 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작은 병원이 있었습니다.
'성수의원'입니다.

◀ I N T ▶ 최정주 / 성동근로자복지센터 센터장
"끼어서 이렇게 상처가 나기도 하고 아니면 뭐 절단되기도 하고
이런 사고들이 이런 공장들에서는 많이 일어나죠.
어찌 보면 그냥 내가 월급도 적게 받고 작은 공장에 다니지만
제 생각에는 주치의 개념처럼…“

◀ I N T ▶ 김주혁 / 성수의원 환자
"성수의원을 얘기할 때 ‘내 주치의다’ 이렇게 얘기를 해왔거든요.“

그 주치의는
다른 의사들과 달랐습니다.

◀ I N T ▶ 김주혁 / 성수의원 환자
"(암 진단받은 친구가) 나오면서 이제 해맑게 웃으면서 나오더라고요.
조금 쑥스러운 웃음과 함께 미소와 함께 나와서 
‘왜 웃으면서 나오냐?’ 그랬더니 선생님이 시를 읽어주셨다고
자기보다 선생님이 더 걱정하시는 것 같다…“

암 환자에게 시를 읽어주며 위로해주던 의사,

힘 없는 노동자들을 치료해주던 의사

그 이름은 '우석균'입니다.

그는 흰 색 가운보다
후줄근한 티셔츠를 더 즐겨 입던,

◀ S Y N ▶ 전진한 / 전 성수의원 부원장
"옷도 이렇게 허름하게 입고 이렇게 배가 항상 이렇게 나와서
배를 쓰다듬으시고 머리도 산발이고…“

가난한 환자의 곁을 지킨 의사였습니다.

◀ I N T ▶ 이상윤 / 의사·노동건강연대 대표
"본인이 진료인데 늦어서 이제 헐레벌떡 이제 왔는데
노숙인 분들이 이제 진료 줄을 쫙 서 있는 거죠.“

◀ I N T ▶ 주영수 /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노숙인 아저씨가 줄을 안 서고 새치기하는 것처럼 느껴서
‘아저씨 줄 서세요’라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고요.
그런데 본인이 ‘난 이제 여기 진료하러 온 의사야’라고 이렇게
(청진기를) 보여주셔서 저희 진료진들이 모두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는…
굉장히 소박하셨어요. 소탈하시고…“

그래서 소외받던 미등록 이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들은
큰 병원비 부담 없이 언제나 그를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초 위암 4기 진단을 받고도,
성수의원을 지켰던 우석균.

하지만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고,
병원은 결국 지난해 8월 문을 닫았습니다.

오래 병원을 찾았던 환자들은
편지로 음성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 S Y N ▶ 성수의원 환자 응원 메시지
"나중에 제 아기도 꼭 봐주세요.
그런데 제가 결혼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것 같거든요.
더 오래오래 사시고, 결혼식장에서 꼭 봬요.
너무 보고싶네요. 꼭 일어나세요.“

◀ S Y N ▶ 성수의원 환자 응원 메시지
"정말 이렇게 편안한 곳 있죠. 눈치 안 보는 병원.
하나님이 선생님 데려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여기 와서 진료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바람입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7일,
사회적 약자들 곁을 지키며
건강이 보편적 권리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헌신했던 우석균은

그가 꿈꾸던 '공공의료' 사회를 보지
못하고 64세의 이른 나이에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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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장으로 열린 장례식.
후배들은 그를 '거리의 의사'로 회고했습니다.

◀ S Y N ▶ 최규진 / 의사
"다른 사람 진짜 논문 내고 SCI 뭐 이런 거 할 때
우석균 선생님은 성명서 쓰고 그런 활동을 하셨습니다.“

의사의 꿈,
그 시작은 한 권의 소설이었습니다.

◀ S Y N ▶ 고 우석균 / 의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의 일부가 뿌리 깊은 나무에 실렸어요. 노동자들에 대해서 굉장한 연민을 가지고.. 의대를 가는 게 좋겠다. 의대를 가면 가난한 사람도 많이 도울 수 있고“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재학중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고,
의사가 된 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창립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보건의료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

◀ I N T ▶ 유영진 / 서울대 의대 후배
"저는 여전히 착한 의사(가 되자) 이런 거였고 우석균 선배는
'세상을 바꾸는 의사' 이런 거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

◀ S Y N ▶ 뉴스데스크 (2001.6.22)
"신비의 백혈병 치료제로 알려진 글리벡이 국내시판 허가를 받았지만
문제는 한달에 300만 원이나 되는 약값입니다.“

지난 2001년. 기적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국내에 들어왔지만,
환자들은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우석균은 진료실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거리로 나온 환자들 옆을 지켰습니다.

"먹을 수 없는 약은 약이 아니다!
글리벡 약가 인하하라!“

백혈병 환자 강주성 씨는
의사 우석균이  함께 힘을 모으자며 찾아왔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 I N T ▶ 강주성 / 건강돌봄시민행동 대표
"저희가 막 시위도 하고 막 그러니까 어 한 분이 찾아왔어요.
제가 딱 봤을 때 아 이분이 의사라고 하는데 전혀 의사 같지가 않더라고
<왜요?> 얼굴이 시커멓고 어디서 그 노동 일 하다가 오신 분 같고..“

환자들과 의사가 연대해 외치면서
결국 제약사는 약값의 10%를
기금 형태로 환자들에게 지원하기로 했고,

충분하진 않았지만
백혈병 뿐 아니라 모든 암 환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률도 낮아졌습니다.

◀ I N T ▶ 강주성 / 건강돌봄시민행동 대표
"그 싸움에서 얻은 얻었던 그 결과는 단순히 백혈병 환자들만의
결과가 아니고 전 국민이 혜택을 받던 그런 싸움이었죠.“

그의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윤 추구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훼손될 조짐이 보이면
어김없이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 S Y N ▶ 고 우석균 / 의사 (다국적제약사 회견, 2006년)
"의사입니다. 어떻게 약값을 높인다면서 어떻게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높인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곳이
곧 의사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여겼습니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쟁이
일어나자 의료도구를 챙겨
이라크로 향했습니다.

◀ I N T ▶ 변혜진 /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우석균 선생님이 이제 (이라크)1학년 아이들 '청진해요'.
그리고 이제 '앉아봐요'. 아이들한테 말 항상 그렇게 하셨는데 이렇게 듣고..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우신 거예요. 의약품만 산 게 아니라
아이들 노트, 연필.. 우석균 선생님이 그걸 제일 냈던 아이디어 같아요.
그러니까 애들한테는 연필을 줘야 된다."

당시 우석균을 따라나섰던 젊은 의사는,
이라크에서 그의 진료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I N T ▶ 김나연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흡입기를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설명을 해 주시는데
정말 몇 번을 반복해서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야 되고
이제 이걸 몸소 보여주시는데 그때 사실 저는 흡입기 사용을 환자한테
저렇게 설명하는 의사 선생님은 처음 봤거든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며
전세계를 누비면서도
우석균 선생님이 건네준
<전쟁과 공중보건>이라는 책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 I N T ▶ 김나연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전쟁을 계속 반대하는 그런 행동을 하는 의사가 되라고 그런 가르침이
사실 이 책에 담겨 있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 아직도 이 책 제가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

물조차 반입이 금지되고,
최루액이 쏟아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우석균은 동료들과 함께 달려갔습니다. 

[eff] "놓으란 말이야!" "경찰이 사람 잡아간다!"

공권력은 의료 지원마저 막아섰고,
테이저건까지 쏘면서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럴 때엔 의사가
시대의 목격자 역할까지 해내야 하는 거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 I N T ▶ 최규진 / 의사
"그 테이저건 침을 제가 보관을 했거든요.
제가 보관을 해서 이제 기자회견장에 전달을 했는데
우석균 선생이 그거 꼭 보관해야 된다고
그 테이저건 네가 진짜 목숨 걸고 그거 잘 보관해서
정말 그 노동자들에게 국가가 이 정도까지
진짜 강압적으로 나온다는 거는 정말 세상에 알려야 되고
의료인이 그 기자회견을 되게 중요하게 해내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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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생명을',

그는 평생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려 했습니다.

◀ I N T ▶ 변혜진 /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그래서 ‘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구호를 선생님이 되게 좋아하신 거죠.
‘너무 아름답고 그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구호 아니야?’ 라고..“

그래서 공공의료 훼손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3년
경상남도가 적자를 이유로
공공병원 진주의료원을 폐쇄했을 때.

◀ S Y N ▶ 고 우석균 / 의사 (진주의료원 앞, 2013년)
"여기 조금이라도 힘깨나 있는 사람들 입원했으면 퇴원하라고 그러겠습니까?
당장 돈 없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니까,
찍소리 못할 것 같으니까 ‘너 퇴원하라’고 하는 겁니다."

갈 곳 없는 환자들을 쫓아내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 S Y N ▶ 고 우석균 / 의사 (진주의료원 앞, 2013년)
"공공병원에서 돈을 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공공병원은 적자가 나야 맞습니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됐습니다.

응급실 뺑뺑이로 환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고,
지역 의료는 붕괴돼 버렸습니다.

[eff-뉴스데스크 앵커멘트]
"대학병원 6곳에 연락을 했지만 한 곳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 S Y N ▶ 고 우석균 / 의사 (공공의료 찾기 집회, 2024년)
"왜 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날까요? 응급실은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왜 코로나 때 대형 병원이 코로나 환자들을 안 받았을까요?
돈이 안 되는 중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윤만 생각하지 않는 병원,
공공병원을 지어야만 응급 의료, 중환자 의료, 필수 의료가 늘어납니다."

우석균은 의사가 특권층, 기득권으로
인식되는 사회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 I N T ▶ 정형준 / 구리 원진녹색병원장
"안타깝게 생각하셨어요. 환자를 진짜 열심히 진료하는 의사들 존경받고
그런 게 아니라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을 이렇게 칭송하고.."

의사로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
우석균은 그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 I N T ▶ 강주성 / 건강돌봄시민행동 대표
"의사라고 하는 그 직업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그냥 한마디로 얘기해서
그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기득권,
그리고 이미 잡고 있는 기득권을 그걸 버린다는 것…“

◀ S Y N ▶ 고 우석균 의사 - 이강택 PD
<자기가 마지막이라는 게 슬퍼>
"내가 마지막 아니야. 내 뒤에 또 있어."
<진짜 모든 걸 바쳐서 진정성 있게 하는 사람이 나오겠나 싶다>
"이상한 소리 하지마. 지금도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는 애들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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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갈 후배 한 사람, 한 사람의 길도
치열하게 고민해줬던 선배.

그는 후배들이 필요로 한다면
그 곳이 오지에 있는 섬이라도 달려왔습니다.

◀ S Y N ▶ 주영수 /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학생들하고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늘 가졌어요.“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무작정 강연을 해달라고
찾아갔던 한 의대생은
보건의료 운동에 투신하며
우석균이 바라던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 I N T ▶ 최규진 / 의사
"진짜 뭐 바로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셨어요.
어디든지 그런 진짜 모임을 그렇게 훌륭한 모임을 꾸려서
활동한다는 거 너무 진짜 대단한 것 같다.
세 명이어도 좋고 네 명이어도 좋고 상관없으니까 내가 갈 테니까…"

그렇게 그의 곁에는
같은 길을 걷는 든든한 후배들이
생겨났습니다.

의대생 시절  우석균의 강연을 듣고
의료 활동가의 길로 들어선 의사 이서영 씨.

소외계층 환자의 집에 직접 찾아가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아픈 곳은 없는지 꼼꼼히 묻고,
귀가 잘 안들리는 환자에게
세심하게 이야기도 건넵니다.

◀ S Y N ▶ 이서영 / 의사
"먹는 거 좀 신경 써가지고 허리둘레 10cm만 줄여봐요."

◀ S Y N ▶ 이서영 의사 - 신성숙 환자
<요즘에 비 오고 그러면 무서워 가지고 잠 못 잤어요?>
"비 오는 거 좀 무서운데 저 싱크대 떨어져서"
<그러니까 저거 또 떨어졌더라 저거 와장창 하는 소리 들었어요?>
"와장창하고 쿵하고 떨어졌지.“

그는 우석균과 함께 시작했던
'좋은 공공병원 만들기 운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 I N T ▶ 이서영 / 의사
"이윤을 위해서만 굴러가는 이 의료 체계가 사실 이 안에 있는 구성원들에게도
상상력을 많이 제한한다고 생각하시고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아요.
우리가 서로에게 더 많은 돌봄을 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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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미터 높이의 송전탑 위,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를 만나러 가는 길.

우석균의 후배 의사 최규진 씨가
사다리차에 오릅니다.

처음으로 고공농성장에
의료 지원을 갔던 날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I N T ▶ 최규진 / 의사
"제가 처음 고공농성 올라갔을 때 우석균 선생님이랑 함께 올라갔었고
선생님께서 진짜 그냥 터벅터벅 올라가시는 거 보면서
저는 굉장히 무서웠었는데 이런 거에 의사가 무서워한다는 게
위에 올라가서 진료 보는 사람들한테 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택시 월급제 실시를 요구하며 농성중인
택시 노동자를 진료합니다.

◀ S Y N ▶ 고영기 / 고공농성 택시 노동자
"이미 법에 나와 있는 주 40시간 택시 월급제 저희가 7년 동안 기다렸는데..“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벌써 100일.

◀ S Y N ▶ 최규진 / 의사
"제가 진짜 수십 군데 올라와 봤지만 이렇게 좁고 열악한 데는 정말 처음이에요..“

아픈 곳은 없는지 보고

◀ S Y N ▶ 최규진 / 의사
"(혈압이) 165까지 나오는데 어우 너무 높은데“

마음의 건강까지 살핀 뒤에야
고공시위 현장 진료가 끝이 납니다.

◀ S Y N ▶ 최규진 / 의사 - 고영기 / 고공농성 택시 노동자
<아 이 장마 이거 어떻게 하려나 장마>
"이 이음새 부분으로 비가 좀 새긴 해요."

◀ S Y N ▶ 최규진 / 의사
"(우석균 선생님이) 사실 이런 고공농성에서 중요한 거는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고.
이 높은 곳에서 이렇게 진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같이 연대하고
지지해 주는 의료인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거다.“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

우석균의 가르침대로
후배 최규진 교수도 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 S Y N ▶ 최규진 / 의사·인하대 의대 교수
"고려인들과 이주민들 그리고 지역 사회에
좀 빈곤한 서민들이 사는 그런 지역이거든요."

인천 청학동에서 열린 현장 수업.

의대생들은 지역 아동센터와
마을 도서관을 둘러보고
현안을 들으며,
지역에 필요한 의료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 S Y N ▶ 조은별 / 인하대 의대 학생
"인천 지역 의료에 대해서 사실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지역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를
이 수업 강연을 통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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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열사들을 모신
마석 모란공원

◀ I N T ▶ 최규진 / 의사
”저를 여기에 처음 데리고 온 것도 우석균 선생님이셨고
진짜 수많은 노동자들과 그런 억압받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큼 더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으로 바꿔 왔는가,
이런 거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

의사 우석균은 이곳에 잠들었습니다.

◀ S Y N ▶ 이서영 / 의사
“아직 아직 저는 우석균 선생님한테 배울 게 더 많이 남았는데
좀 일찍 가신 것 같아서..“

◀ S Y N ▶ 최준서 / 의대생
”선생님의 삶에서 배우고 그리고 남기고 가신 것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

‘거리의 의사’ 우석균.

그와 함께
성수의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가장 약하고 소외된 환자 곁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
평생 이 소신을 실천해온 그는

별세 직전까지 공공의료, 지역의료가
무너진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개선코자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인재들이 앞다퉈 의대로 몰리고,
의사가 되기 위해 유치원때부터 경쟁에
돌입하는 나라.

그런데도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정책이 발표될 때면
의사단체는 파업 카드를 들고 반대합니다.

의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의사 우석균의 삶, 그리고 죽음은
다시한 번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 S Y N ▶ 고 우석균 / 의사
"의사는 좋은 직업이라고는 생각하는데
돈 많이 버는 직업이지, 존경할 수 있는 직업인가…
‘한국의 의료는 어떻게 되고
한국의 의사는 어떻게 길러져야 하나’라는 것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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