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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내 인생, 누가 알랑가?

2018.11.19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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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의도
“내가 이러고 살아온 것은 아무도 몰라, 진짜 자식들도 몰라!”
수십 년 전, 우리나라는 여성에게 엄격한 사회였다. 여성들은 태어났을 때뿐만 아니 라 성장 과정, 결혼하는 순간까지 마치 짜여있는 틀에 맞춰서 순서들을 밟았다. 남아 선호사상이 강하던 시대에 태어나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박을 받기도 했고, 남 자 형제들에게 밀려 제대로 된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물며 일생의 중대사인 결 혼조차도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기 일쑤였다. 그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들 이 바라본 본인의 인생은 어땠을까? 그녀들의 황혼에서 과거를 바라보았을 때 여자 로 태어나서 살아온 세월이 행복했을까?
■ 주요 내용
■ “시집? 나는 속아서 팔려왔어!”
요즘에는 연애하고 마음 맞으면 결혼하는 부부들이 대부분이지만, 옛날 우리네 할머 니들에게는 낯선 이야기다. 부모님이 골라주는 상대와 얼굴도 안 보고 시집가는 것 이 당연했고, 신랑이 마음에 안 들어도 한평생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인생이었 다.
중신어미가 서울 공장에 보내준다고 해서 배를 탔는데 뭔가 이상해서 “배를 타고 서 울 가는 곳이 어디 있어요?”라고 하니까 “이 바보 같은 것들아! 서울? 너희들 신랑 얻 어주려고 데리고 왔지! 서울 지나온 지가 옛날이다. 너희들 신랑 하나씩 노총각들로 얻어줄 거야!” 라고 하는거야. 중신어미가 우리를 강원도에 팔아 넘긴거지 - 조성단 인터뷰 중
누군가는 속아서 팔려오기도 했다. 막내딸로 애지중지 자랐던 조성단 할머니는 ‘서 울로 취직시켜준다.’는 중신어미의 말에 속아 배에 올라탔다. 중반쯤 다다랐을 때 이 상함을 느꼈던 할머니는 “서울도 배를 타고 가요?”라고 질문을 했고, 그제야 중신어 미는 ‘이 바보들아, 너네 시집가는 거야!’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했다. 전라남도 해 남의 꽃다운 처녀는 그렇게 강원도 홍천으로 팔려오게 되었다. 뒤늦게 집으로 돌아 가려고 해봤지만 어린 나이의 처녀가 도망치기에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처음에는 돌아갈 돈이 없어서, 나중에는 자식들이 눈에 아른거려 할머 니는 결국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직도 그때를 회상하며 노래를 읊조 리곤 하는 조성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언제나 내 고향을 마냥 그리워 -“
■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며느리’라는 이름
그 시절의 며느리는 집안의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든든한 일꾼’과 다름없었다. 그 마저도 집안일만 하면 다행이지, 밭일까지 도맡아서 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며 느리’라는 이유로 모든 궃은 일을 다 맡아서 했지만, ‘며느리’라는 이유로 구 박 을 많 이 받기도 했다.
아주 힘들고 죽고 싶을 때가 많았지. 그런 데다가 조금만 잘못하면 시어머니가 비녀 찌른 머리를 잡아채서 패대고 하니까. - 임영자 할머니 인터뷰 중
시어머니께 고된 시집살이를 당했던 임영자 할머니는 하루가 멀다하고 맞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고 시어머니에 관한 추억은 맞은 것이 7할이라 는 할머니에게는 기막힌 사건이 있었다. 추운 겨울,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임영자 할 머니는 비누를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시어머니에게 또 맞을까봐 겁났던 할머니 는 고쟁이만 입고 비누를 꺼내기 위해 차디찬 강물로 들어갔다. 비누를 건지기는커 녕 물이 깊어서 죽을뻔 했다는 할머니. 다행히 이웃사람이 할머니를 발견하고 구해 줬지만, 겨우겨우 목숨을 건진 할머니는 시어머니의 매질이 무서워 선뜻 집으로 향 할 수 없었다.
그런가하면, 특이하게 시아버지에게 시집살이를 당한 김정희 할머니도 있다. 호랑 이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하는 모든 것에 엄했다.
재봉틀을 사놓고 한 번도 안 해봤으니 어떻게 알아. 재봉틀질 하다 뒷걸음질 하면 실이 끊어지고, 뒷걸음질 하면 실이 끊어지고... 그런데 재봉틀질 할 줄도 모른다고 시아버지가 천장에 있는 시렁(선반)에다가 올려놔버렸다! 높은 시렁(선반)에 올려 놓고 석 달을 못하게 했다. 그러니까 내 이 심정이 얼마나 탔겠노! - 김정희 할머니 인터뷰 중
그 중에서도 아직도 할머니의 가슴에 사무친 사건이 있다. 재봉틀을 처음 장만했 을 때, 가족 중 누구도 할머니에게 재봉틀 질을 알려주지 않았다. 할머니가 혼자서 재봉틀을 돌리면 실이 끊어지고, 돌리면 끊어지고... 그런 며느리를 보고 답답했던 시아버지는 재봉틀을 천장에있는 시렁(선반)에 올려놔버렸다. 제대로 익히기도 전 에 재봉틀을 뺏긴(?) 할머니는 시아버지에게 ‘재봉틀 질 하나 못하는 바보’ 취급을 받 았다. 억울한 할머니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 정말 ‘내’ 편 아닌 ‘남’편
그래도 할머니들은 ‘남편’이라는 내 편이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하 지만 정말 내 편이 맞는 것인지... 툭하면 술 먹고 주정 부리기 일쑤고, 어떤 남편은 하룻밤 만에 도박으로 쌀 몇 가마니를 날리기도 했다. 혹은, 어머니 말만 듣고 아내 를 쥐 잡듯 팼던 조성단 할머니의 남편 같은 사람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아들이 들어오면 나에 대해서 일러요. 이르면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옛날에는 무식해가지고! 그래도 마누라 말을 좀 들어봤어야 되는데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안하고 무조건 때려요. 그 불쌍하게 (아내가) 그 낯설은데 와서 있는데도 그렇게 자기 엄마말만 듣고 잘못하면 맨날 때리고 그래서 아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 - 조성단 할머니 인터뷰 중
낯선 시댁과 고된 시집살이에서 조성단 할머니가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다. 하 지만 남편은 시어머니 말만 듣고 아내에게 주먹질을 일삼았다. 남편의 폭력에 참다 못한 할머니는 결국 2살배기 아기를 두고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섰다. 마음을 굳게 먹고 배에 탄 할머니의 눈에 저 멀리 아기를 업은 시어머니가 “어미야... 어미야... 애 기 젖 좀 빨리고 가...!”라고 외치는 것이 보였다. 그 길로 배에서 내린 할머니는 ‘헛 것을 본건가?’하고 배에 올라탔다가, 업혀있던 아이가 걸려 다시 내리고, 다시 배에 올라타고를 6번을 반복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며칠이 지난 후에야 시어 머니에게 그 날의 일을 물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물음에 시어머니는 “무슨 소리냐! 나는 강가에 아기 업고 나간 적 없다!”라고 하며 발뺌을 했다고... 아직도 그 날의 기 억이 생생하다는 조성단 할머니.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 그래도 후회 없는 내 인생
길었던 인터뷰의 마지막, 할머니들은 모두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도 내가 고생 많이 했어도 우리 자식들 다 잘된 것 보니 그래도 잘 살았지, 뭐.”
한평생 고생만 하며 살아왔다는 할머니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어요?”라 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다 비슷했다. “자식들 장가, 시집보낼 때”, “자식들이 잘됐을 때”라는 대답을 하며 할머니들은 흐뭇해했다. 그녀들의 한 많은 인 생살이를 버텨온 원동력도, 그 끝에 거둔 최고의 수확물도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하 지만 할머니들이 그 힘든 결혼생활을 끝내지 못한 것 또한 자식들 때문이었다. 과연 그녀들의 인생에서 ‘자식’은 솔직하게 어떠한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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