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 1만 5천 개 생산! 케이크 시트 제조 현장
2. 모자(母子)의 진심이 담긴 칼국수
3. 죽었다 살아난 내 남편 금옥 씨 2부
4. 돈쭐 그날 후! 빵식이 아재요 어찌 지내는교~
2024.09.190
1. [오늘 대(大)공개] 하루 1만 5천 개 생산! 케이크 시트 제조 현장
특별한 날 빠질 수 없는 존재, 케이크! 그중 케이크의 기본이 되는 케이크 시트 제조 현장을 오늘 대공개~! 대구광역시 북구의 위치한 한 케이크 시트 공장은 2002년도에 설립하여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 하루에 생산되는 시트만 1만 5천 개! 연간 생산량은 300만 개로 주로 온라인 판매와 유치원에 납품되고 있다고. 현재 생산되는 케이크 시트는 무지개 시트로 취향과 기호에 따라 장식만 하면 나만의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단다. 하루에 사용하는 달걀만 무려 3만 알! 부드러운 빵을 만들기 위해 달걀 반죽을 먼저 한 다음, 밀가루를 넣고 반죽해주는 것이 핵심. 그리고 이 안에선 최고의 케이크 시트 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다하며 빛내주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양의 달걀이 들어가는 만큼 깨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손놀림으로 달걀을 까는 달인이 떴다! 이곳에 입사한 지 16년 차라는 김혜년 달인. 그녀의 진짜 기술은 양손 스킬 신공으로 달걀 두 개를 동시에 깨는 것! 달인의 달걀 깨기 노하우도 오늘만 대(大)공개~!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더욱 빛내주는 나만의 케이크로 추억을 남겨주는 케이크 시트! 그 제조 현장을 지금 찾아가 본다.
2. [할매 식당] 모자(母子)의 진심이 담긴 칼국수
오늘의 할매 식당은, 경기도 수원 특례시에서 30년 가까이 칼국수를 만들어온 김순학 할머니(76세)의 식당이다. 할머니에게 이 식당은 그저 생계를 위한 식당이 아니라 할머니를 살게 한 식당이라는데... 그 이유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갑작스레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루하루 슬픔 속에 지내던 할머니에게 가까운 누군가가 ‘칼국숫집을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단다. 몸이라도 바빠야 슬픔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한 칼국숫집. 할머니만의 특별한 손맛으로 사골 육수를 끓이고, 직접 반죽해 뽑은 면을 사용한 까닭에 문을 열자마자 그야말로 소문난 칼국숫집이 되었단다. 장사가 잘되니 정말 몸이 피곤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잠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할머니. 칼국숫집은 남편의 빈자리를 메워주며 할머니를 살린 은인인 셈이란다. 할매 식당 칼국수 국물의 기본은 ‘한우 사골’이다. 사골을 오랜 시간 푹푹 고아 육수를 준비하고, 여기에 직접 반죽한 면을 삶아 넣어주면 한번 온 걸음 두 번 세 번 오게 만드는 마력의 사골 칼국수로 탄생한다고. 그렇게 27년 동안 단골은 늘고 늘어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단골들이 많아졌단다. 군 제대 후 할머니를 도와 함께 칼국수 집을 운영 중인 아들 김동연(47세) 씨는 연세가 많아져 힘이 달린 어머니를 대신해 칼국수면 반죽을 도맡고 있다. 그리고 이 집이 많은 이들에게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추가 사리는 공짜이기 때문! 식당에 온 손님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라는데... 따뜻한 마음과 넉넉한 인심으로 27년째 수원에서 칼국숫집을 운영 중인 김순학 할머니의 식당으로 함께 가보자.
3. [가족이 뭐길래] 죽었다 살아난 내 남편 금옥 씨 2부
전라남도 곡성군. 해발 400M 고지에서 사는 차금옥(66세), 허상숙(62세) 씨 부부. 올해로 결혼 41년 차지만 여전히 신혼부부 같은 모습이다. 도시에서 네 남매 키우며 살다가 20여 년 전 남편 금옥 씨가 먼저 귀농을 하고, 아내 상숙 씨는 네 남매를 모두 키워내고 10년 전 남편 곁으로 들어왔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다 보니 황혼의 부부는 요즘 다시금 신혼을 되찾은 기분이란다. 금옥 씨가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홀로 산으로 들어온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는데...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3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낸 금옥 씨. 가족들은 금옥 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객지에 나가 죽었다고 생각해 금옥 씨의 사망 신고를 했단다. 이후 기적적으로 깨어난 금옥 씨는 우여곡절 끝에 호적 부활시켜, 그의 제적등본에는 ‘사망’과 ‘부활’이란 글자가 함께 적혀있다. 호적은 부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통사고 후유증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건강을 위해 홀로 산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단다. 살기 위해 찾은 산, 하지만 1년 만에 시너 폭발 사고로 또 한 번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힘든 시간 가장의 역할을 하며 가족을 지켜준 아내 상숙 씨.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그래서 남은 인생은 아내 상숙 씨를 위해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는 금옥 씨.
그날 저녁, 마을 주민들이 금옥 씨네 집으로 모였다. 수시로 모여 밥을 먹는다는 산골 이웃들. 금옥 씨 부부의 또 다른 가족이란다.
노인회장을 맡게 된 금옥 씨는 요즘 이웃들을 위해 특별한 장기를 연습 중이라는데... 부창부수! 남편이 연주하면 아내가 노래를 부른다~ 깊은 산골 울려 퍼지는 트로트의 선율~
인생의 풍파를 이겨내고, 황혼에 다시 써내려가는 산골 부부의 신혼 일기. 지나간 시간은 추억하고 다가올 내일은 기대하고!
지금, 이 순간은 가~장 행복하게 보낸다는 부부를 만나보자.
4. [그날 후 N] 돈쭐 그날 후! 빵식이 아재요 어찌 지내는교~
남해의 한 초등학교 근처에는 한 빵집이 있다. 이곳 사장 김쌍식 씨는 벌써 5년째 남해 학생들의 아침을 책임지고 있다고. 가게 운영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가며 아이들의 아침을 꼭 챙겼단다. 이에 주변에서는 그를 괴짜라 불렀고, 동네에서만 떠돌던 이야기를 남해 여행 간 한 기자가 접하며 사장님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언론보도부터 방송은 물론, 학교 선행 사례로 선정됐었다고. 특히, 사장님이 화제가 됐던 건 돈이 없을 때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빚까지 져가며 아이들을 챙긴 사연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진정한 선행에 사람들은 감복했고, 전국 각지에서 ‘돈으로 혼쭐내러’ 남해까지 찾아간 것. 그리고 그렇게 빵으로 행복을 전하던 사장님에게도 빵집에서 싹튼 사랑이 생겼다. 20년 전 자신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이진숙 씨와 결실을 맺은 것!. 올해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두 번째 돈쭐로 너무 바빠 내년 봄으로 결혼을 미뤘다는데.. 빵으로 선행(善行)을 선행(先行)하는 빵식이 아재 김쌍식 씨의 그날 후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