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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 밥상(?)의 비밀
2. 지금이 제철! 봄의 전령사 000
3. 38세 보험왕이 시골로 온 까닭은?
4. 2002년, 김해 항공기 추락 사고를 아시나요?

2025.04.090

1. [오늘 대(大)공개] 황금 밥상(?)의 비밀

지리산 자락 경남 거창에 자리한 유기 공방, 그런데 이곳 유기 제품들을 다른 곳과 좀 다르다? 상식을 파괴하는 유기 제품들이 눈길을 끄는데... 액세서리인 반지부터 와인 잔에 혀클리너까지 변신이 무궁무진하다. 디테일함이 생명인 유기 제품들을 만들어낸 건 바로 최대 48년부터 최소 20년 경력의 베테랑 직원들이다. 1,250도에서 주석과 구리를 78:22 황금비율로 녹여내고 틀에 부어 만든 후 750도에서 한 번 더 구워주고 하나하나 손길로 매끈하게 잘 다듬어야 비로소 빛깔 고운 유기가 완성된다. 수제로 제작되다 보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하는 셈.
예부터 살균 작용과 온도 유지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유기, K-POP과 한식 열풍에 덩달아 이곳의 유기도 무려 9개 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특히 4대 전수자인 이 공방의 대표는 세계로 뻗어나갈 유기를 위해 색을 입히는 옻칠 작업을 하는 등 유기의 단점은 없애고 매력은 한껏 끌어올렸다.
쓰기 불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편견을 깨버리고 세계의 MZ세대가 반한 한국 전통 유기 공방의 현장을 대 공개한다.

2. [할매 식당] 지금이 제철! 봄의 전령사 000

인천 동구 만석동의 한 골목 끝자락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식당이 있다. 무려 6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순임 할머니(93세)의 식당. 이제는 며느리인 이금례 할머니(66세)가 2대째 대를 이어 운영하는 이곳은 이미 인천에서 소문난 ‘주꾸미볶음’ 맛집이다. 60여 년 전, 주꾸미를 더 맛있게 먹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양념을 넣어 주꾸미볶음을 시작했다는 우순임 할머니. 이제는 인천은 물론이고 타지에서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올 정도라는데. 할매 식당 주꾸미 맛의 비결은 ‘정직’! 서해에서 잡은 자연산 생주꾸미만을 사용해서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란다. 그뿐만 아니라 신선한 재료로 직접 만든 할머니만의 비법 양념장까지! 봄 제철 맞은 큼직한 주꾸미에 매콤한 양념을 버무리고, 여기에 향긋한 미나리까지 얹어주면 봄 한정 미나리주꾸미볶음 완성이다. 그 중독성 있는 맛에 60년 동안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데. 40년 전 시집왔을 때부터 시어머니를 도와 묵묵히 식당 일을 도왔다는 이금례 할머니. 이제는 어엿한 2대 사장님이 되었는데. 우순임 할머니는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가게를 물려주는 건 당연하다며 며느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맛뿐만 아니라 정성까지 대를 이어 60년째 유지하고 있다는 이곳! 봄 제철 주꾸미 맛보러 할매식당으로 함께 가보자.

3. [가족이 뭐길래] 38세 보험왕이 시골로 온 까닭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한 시골 마을. 봄볕 따스한 논밭을 진두지휘하며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와 흡사한 포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나이가 있었으니! 올해로 농부 4년 차, 초보라기엔 뭐 하나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보는 권오건 (38,남편) 씨다. 요즘 땅을 일구고 밭을 가꾸며 벌레가 생기진 않았는지~ 땅은 또 메마르진 않은 건지~ 야무지게 둘러보는 모습이 매서운데. 그 옆엔 항상 아내 신미영 (42,아내) 씨가 함께다. 늘 자신만만, 열정 많은 남편이라 때론 주변 사람들 힘들게(?)도 한다는데.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씩씩하고 듬직한 남편의 모습이 멋져 보였던 아내. 하지만 살다 보니 난감한 순간도 참 많았단다.
이곳 시골에서 나고 자라 이런저런 일에 도전하던 남편은 부모님을 따라 농부의 길로 들어섰지만~ 늘 일손을 도와주시는 엄마와 갈등 구도를 펼쳐 모두를 당황하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데. 매일 크고 작은 일로 부모님과 다투는 탓에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지만 그 속엔 농부의 열정을 불태울 수밖에 없는 사연이 숨어 있다고...
오늘도 우당탕탕, 바쁜 삼대 가족의 일상을 따라가 본다.

4. [그날 후] 2002년, 김해 항공기 추락 사고를 아시나요?

2002년, 당시는 한일월드컵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모두가 열광하던 그때, 김해에선 항공기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베이징에서 탑승객 166명을 태우고 출발한 항공기는 김해공항에 그날 김해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던 탓에 착륙 과정에서 항로를 이탈하며 돗대산에 부딪히며 추락했다.
당시 사고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설익수 씨. 그는 사고 가 발생한 지 23년이 흘렀어도 그날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단다. 사고 당시 출동했던 오세준 소방관도 그날의 현장은 참혹했다는데.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매우 추웠지만, 비행기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고 현장의 열기가 엄청났단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승무원을 포함해 탑승객 166명 중 129명이 사망했고, 37명이 생존했다.
사고 발생 3년 만에 밝혀진 원인은 조종사의 과실이었다. 하지만, 사고 발생 3년 만에 사고 원인이 밝혀지며 그동안 유가족과 생존자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문제는 그 이후 항공사 측과 보상 문제로 소송하며 하루하루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는데. 더욱이 당시 비행기 사고는 교통사고로 인식되며 피해 보상 기준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단다. 유가족과 생존자가 사고 발생 후 8년간 소송했고, 이후 비행기 사고가 대형 재난 사고로 인식되는 기틀이 됐다는데. 2000년대 국내에서 발생한 최악의 항공기 사고. 하지만, 많은 이가 몰랐던 김해 항공기 추락 사고와 그 후 달라진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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