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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재개발

2025.12.144

■ 위기의 종묘

북악산 끝자락,
울창한 수목이 둘러쌓인 성스러운 공간에 자리잡은
길고 낮게 뻗은 정전.

단청 하나 없는 처마 아래
일정한 간격으로 질서 있게 세워진 기둥.

화려함 대신 절제와 비움으로 경건한 위엄이 전해집니다.

6백여 년 전,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세우면서
왕이 머무는 공간보다 먼저 세워진 이곳, 종묘.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며 예법에 따라
정성스럽게 올리는 제례와
제례에 맞춰 행해지는 음악과 무용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백년 간 왕실 사당과
제례 의식이 온전히 보전되고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종묘가 유일합니다.

◀ I N T ▶ 이준 / 고종 황제 증손
"'조선은 예의 나라다. 그래서 효를 강조했고 또 임금께 충성하는 그런 예를 갖추는 게 조선의 격식이다. 그러니까 너도 올 때는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라'고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가치를 높이 평가해 유네스코는
1995년 종묘를 우리 나라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역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 I N T ▶ 최규선·최은오·정명희
"삶에서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그럴 때 가끔씩 와서 한 번씩 둘러보는 편이거든요.“

◀ I N T ▶ 마리아·엔더슨 / 덴마크 관광객
"마치 신성한 분위기와 평범한 공간이 공존하는 느낌인데 정말 좋더라고요.“

◀ 최경재 기자 ▶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엔 종묘가 있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도 이곳 종묘를 이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불과 180미터 떨어진 곳에
최고 145미터에 달하는 초고층 건물을 짓기로 하면서,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서울시와 유네스코가 주고받은
공문과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는데요.

유네스코는 일관되게 초고층 재개발에 대해 경고했지만,
서울시는 종묘 경관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이 경고를 무시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유네스코 경고' 무시했다

종로를 사이에 두고 종묘와 인접한 세운 재개발 지구.
지난 2021년 재보궐 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복귀한 오세훈 시장은
이 세운지구 재개발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 S Y N ▶ 오세훈 / 서울시장 (서울시의회 시정질문, 2021년 11월 18일)
"세운지구를 보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10년 전에 제가 퇴임할 때 10년 정도 원래 제가 세웠던 계획대로만 꾸준히 실행을 했더라면 지금 서울 도심의 모습은 완전히 상전벽해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   

이듬해 4월 발표한 '녹지생태도심 재창조전략'.

세운지구 일대에 용적률과 건물 높이를 올리고,
민간이 얻는 개발이익으로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심 개발이 아닌 재생을 추구했던,
건물 최고 높이를 71.9m로 설정했던 전임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2023년 6월, 서울시가 발표한
세운지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

기존에 600% 이하였던 용적률을 700에서 1,000%로 높였고
일부 구역은 1,500% 넘게 높이기도 했습니다.

건물 높이 제한도 풀어서
최고 259m 건물까지 지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미국 뉴욕의 대표적 마천루로 꼽히는 록펠러 센터와
비슷한 높이의 건물까지 종묘 인근에 들어설 수 있게 한 겁니다.

종묘 앞 초고층 건물 건설이 가시화되자
보다못한 한 시민단체가 "종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된다"며
유네스코에 유산영향평가를 요청했습니다.

세계유산영향평가란 유네스코 국제규범에 따라 개발 계획이
유산 가치를 훼손하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절차입니다.

◀ I N T ▶ 안근철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
"건축가분이랑 같이 이제 시뮬레이션도 돌려보고 하면서 그런 문제 제기를 한 거죠.“

그러자 유네스코는 2023년 8월,
재개발 사업이 종묘에 미칠 영향을 조사해
한 달 안에 '보고서'를 제출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습니다.

서울시는 이 요청을 받은 뒤 지난해 초,
자체 보고서를 작성해 유네스코에 보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이 보고서를 입수해 자세히 분석했습니다.

서울시는 보고서에서 "세운지구가 종묘에서 100m로 설정된
보존지역 밖에 있기 때문에 물리적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부분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더 나아질 거라고 서술하면서도
"종묘 정전 하월대에서 바라봤을 땐 일부 건축물이 돌출돼
경관변화가 예상된다"며 '부정적 영향'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서울시는 259m까지 허용하기로 했던 건물높이는 200m로 낮추고,
종묘 잔디밭에 15m 이상의 나무를 심어
고층 건물을 가리겠다는 계획을 보고서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종묘와 가장 인접한 세운지구 4구역 높이가
문화재청과의 협의로 71.9m로 정해져 있는만큼
자연스러운 스카이라인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서울시는 건물 높이를 조정할 경우엔
문화재청과 협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서울시의 행보는
보고서에서 언급한 내용과 딴판이었습니다.

유네스코가 서울시에 보고서를 요구한 직후인
2023년 10월,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느닷없이 문화재 보호 조례를 폐지했습니다.

"문화재 보존구역 100m에서 벗어나 있는 구역이라도
문화재에 미칠 영향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국가유산청 등과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

이 조항을 삭제해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건물 높이를 마음대로 높일 수 있게 만든 겁니다.

◀ I N T ▶ 김우영 / 더불어민주당 의원
"개발과 관련된 심의 의무를 삭제를 해버렸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그러니까 뭔가 전략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그런 의도로 그 보고서에 조례 삭제 사실을 숨긴 게 아닌가...“

서울시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를 검토한
유네스코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가 작성한 평가서.

<스트레이트>는 올해 4월,
국가유산청을 거쳐 서울시에 통보된 이 평가서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유네스코 평가서는
"서울시가 제시한 주장과 수치들은 일관성이 부족해 보인다",
"재개발 지역의 지형 특성을 이해하기 어렵고
지형 특성이 건물 높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맥락 설명이 부족하다"고
혹평했습니다.

이어 "세운지구 개발이 종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란
서울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완전하고 포괄적인 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권고를 전달받은 서울시는
"평가서가 영어 원문으로 작성돼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국가유산청이 한글로 번역된 보고서를 다시 전달했지만,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답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10월 30일,
종묘를 마주하는 세운 4구역에 대해서도
건물 최고 높이를 145m까지 올리는 계획안을 일방적으로 고시했습니다.

서울시 스스로 보고서에서 '필수적'이라고 했던
문화재청, 현 국가유산청과의 협의도 전혀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법원이 문화재 보호 조례 폐지에 대해
"문제 없다"고 판결하면서
초고층 재개발이 실제로 추진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지난달 15일, 유네스코는 공식 서한을 통해
"세운지구 개발에 대한 유산영향평가를 받을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했습니다.

또 "유산영향평가가 유네스코에 제출되고
긍정적인 검토를 받을 때까지 사업 승인을 중단해달라"고 했습니다.

올해에만 두번째 나온 유네스코의 권고였습니다.

영국의 리버풀 항만지역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지난 2021년 그 지위를 박탈당했습니다.

3km 떨어진 도심에 대형 축구장을 건설해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지금 계획대로면 리버풀 지역 사례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훨씬 높은 빌딩이 종묘에 들어서게 됩니다.

거듭된 권고를 따르지 않는다면
유네스코가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 I N T ▶ 성종상/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설계학과 교수
"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주체들의 관리 의지 또는 관리의 어떤 매뉴얼 같은 것이 제도적으로, 공식적으로, 절차적으로 잘 수행되고 있는가가 되게 중요한 항목인데 이거는 거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거니까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유네스코 등재가 실제로 취소되는 건 쉽지 않다"면서
"정부가 등재 취소를 막으려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정부 탓을 했습니다.

◀ S Y N ▶ 오세훈 / 서울시장 (유튜브 '오세훈TV', 12월 3일)
"우리 정부가 어떻게 방어 논리를 가지고 설득하느냐에 따라서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건데, 정부가 오히려 취소될 수 있다고 하는 건 오히려 국익을 훼손할 수 있는 선동적인 주장이라고…“

<스트레이트>는 유네스코측에 질의서를 보내
서울시가 유산영향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입장을 물었습니다.

유네스코는 "내년 7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종묘의 보존 상태가 심의 안건으로 다뤄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종묘를 둘러싼 개발 사업들은 유산영향평가가 필수"라며
"평가 결과에 따라 등재 취소 전 단계인
'위험 유산 목록'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최경재 기자 ▶

이 곳 세운 4구역은 종묘 경관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곳인데요.

자칫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음에도,
서울시 그리고 오세훈 시장은 "초고층 개발을 밀어붙이겠다"면서
유네스코가 요청한 유산영향평가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속도전을 벌이는 건지,
왜 초고층 건물을 고집하는 건지,
또 서울시의 재개발 방식에 문제는 없는지 따져봤습니다.

■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세운지구 재개발은 크게 8개 구역으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종묘와 사이에 도로를 두고 바로 인접한 곳이
2구역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4구역입니다.

세운 4구역에 최고 145m 건물이 세워질 경우
종묘에서의 바라본 경관은 어떤 모습일까.

국가유산청이 내놓은 예상 이미지는
초고층 건물이 시야를 상당 부분 가로 막고 있습니다.

◀ S Y N ▶ 최휘영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종묘 현장 방문, 11월 7일)
“그늘이 안 생기면 된다고요? 아니, 하늘을 가리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이것이 바로 60, 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 아닙니까?”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가 제작한 가상 이미지를 공개하며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 S Y N ▶ 오세훈 서울시장 - 김규남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서울시의회 시정질문, 11월 18일)
"눈이 가려집니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숨이 턱 막힙니까?" <네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기가 눌립니까?" <안 눌려 보여요.>

그런데 이 이미지를 서울시가 지난해 유네스코에 제출했던 보고서에 담은
예상 조감도와 비교해봤습니다.

오 시장이 공개한 이미지와는 다르고
오히려 종묘 경관 훼손을 우려하며 국가유산청이 내놓은
예상 조감도와 더 유사합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광각,
즉 "넓은 폭까지 담아내는 각도를 이용해
시각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 I N T ▶ 황평우 /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지나치게 서울시는 광각을 이용했고 광각이라는 게 넓은 렌즈 보듯이 그래서 보면은 그 건물은 작게 보이잖아요.”

◀ I N T ▶ 안창모 /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지금은 세운 4구역 높은 빌딩 하나일지 모르지만 조금 지나면 그 옆에 줄줄이 다 해달라고 하면은 이제 병풍처럼 늘어설 거라고요. 굉장히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세운4구역의 재개발 사업은
오세훈 시장의 첫 취임 직후인 지난 2006년 시작됐습니다.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녹지공간 조성과 함께
초고층 빌딩을 세우려 했던 계획은
지난 2011년 오 시장이 무상급식 실시에 반대하면서
자진사퇴한 뒤 멈춰섰습니다.

후임 박원순 시장은 재개발 대신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는
도시 재생과 복원 사업을 택했고
지난 2016년 당시 문화재청 등과
건물 최고높이를 71.9m로 제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시행사와 땅 주인들의 협의를 거쳐 사업시행계획,
관리처분 인가까지 마치고 착공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취임한 오세훈 시장의 초고층 개발 결정으로
이 합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 I N T ▶ 강동진 /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골목 골목마다 녹아 있는 작은 제조업 공장들과 또 부품 공장들이 만들어냈던 다양한 스토리들 이런 거 다 잃어버리는 거예요. 당장의 이익만을 노리는 어떤 그런 방식만의 개발 방법을 종묘 앞에도 서울의 강북에 이런 정체성이 아주 강한 지역에 ‘그런 방법밖에 쓸 수 없다’라는 게…”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개발방식을 두고
"민간 업자 배불리기"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운 지구 가운데 종묘와 인접한 4구역은
민·관 결합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오 시장은 "민간업자의 수익이 커져야 그 수익의 일부를
녹색 공간 조성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건물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축구장 5개 크기의 이 세운지구 4구역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SH가 57%,
민간이 32.7%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국공유지 등이 9.6%입니다.

그런데 민간보유 토지의 3분의 1을
한호건설그룹이란 개발 업체가 갖고 있습니다.

세운지구 3구역과 6구역 재개발에 이미 참여했던 이 회사는
오세훈 시장이 세운지구 재개발계획을 천명했던 2022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약 6백억 원을 들여 4구역 토지를 집중적으로 사들였습니다.

◀ I N T ▶ 이광수 / 부동산 전문가
"기업이 그렇게 사는 건 흔치 않은 경우라고 저는 보고 있고 아, 이건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무조건 개발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라는 확신을 가졌던…“

세운 4구역의 수익 배분은 사업시행자인 SH가
수수료 명목으로 4% 정도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한호건설을 포함한 128명의 토지주들에게
돌아가도록 설계돼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계획대로 용적률을 1,000%로 높여
초고층으로 개발한다면 토지주들, 특히 민간토지의 3분의 1을 보유한
한호건설의 수익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정황을 두고 '대장동'식의 특혜라는 비판까지 나오자
한호건설 측은 "모두 근거없는 비방이고, 
개발 이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갑자기 현재 보유한 세운 지구내 토지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오 시장의 초고층 개발 방침에 따르면
세운 상가는 곧 철거돼야 합니다.

토지주들은 오 시장의 개발계획을 지지하고 있지만
세운상가에서 수십년간 머물러온 세입자들은
당장 생계 걱정에 막막하기만 합니다.

◀ I N T ▶ 고재룡 / 세운상가 상인
"어떻게 될지 불안한 거죠. 매일같이 세운상가 허문다고 그러고 재개발되게 되면은 건축비가 올라가고 이런 게 따라서 임대료 같은 게 상승하고 이렇게 되면은 우리가 여기에서 버텨 나가기가 힘들죠.“

◀ I N T ▶ 김영식 / 세운상가 상인
"여기서 한 평생을 뼈를 묻은 거예요. 근데 이게 개발을 해가지고 내 사업체가 없어진다고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초고층 빌딩과 인위적인 녹지가 들어서면
모든 국민, 그리고 전 세계인이 누려야 할 종묘의 문화적 가치가
훼손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 I N T ▶ 송현주
"지금 되게 훤하고 좀 막혀 있다는 느낌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런 빌딩들이 계속 들어서게 되면 그런 경관 쪽으로도 이미지를 되게 훼손시키지 않을까…“

◀ I N T ▶ 엘리자베스/ 멕시코 관광객
"안쪽에서 건물이 보이면 전통적인 풍경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풍경이 될 테니까요. ”

최근 한 여론조사는
서울시의 종묘 인근 재개발 계획에 대해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69%로
"초고층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보다
3배 이상 많았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우리 문화유산의 지위를 위협하면서까지,
쏟아지는 반대 여론에도 속도전 식으로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 I N T ▶ 최혁규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시장 한 명이 이거를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죠. 도심과 세운상가 주변을 어떻게든 재개발하는 거 그게 되게 큰 어떤 상징적인 자신의 정치적인 과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임상재 기자 ▶

종묘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의 역사적 공간,
광화문 광장입니다.

이곳 역시 서울시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으로
논란에 휩싸여있습니다.

현재 광장에는 이렇게 높은 가림막이 처진 상태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요.

서울시가 6.25 전쟁 참전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다며,
대형 석재 조형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와 문화가 담긴 광장의 모습이 크게 바뀌는 중대한 사인인데도
일방적으로, 또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 참전국들도 '외면’

추워진 날씨에도 여전히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 I N T ▶ 딩샤오옌 / 중국 관광객
"여기는 한국 역사에서 오래된 장소잖아요. 한번 와서 알아보고 싶었어요.“

웅장한 세종대왕 동상 앞은
기념 사진 장소로 가장 인기입니다.

◀ I N T ▶ 앤서니 / 가나 관광객
"(세종대왕) 동상이 인상적입니다. 유튜브에서 이 동상을 봤는데, 직접 와서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세종대왕 동상 바로 옆에 높고
긴 가림막이 쳐져있습니다.

◀ I N T ▶ 남현우
"<혹시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아시나요?>
글쎄요. 저도 이거 오늘 오랜만에 와서 잘 몰랐는데 무슨 공사 하는지는…“

세종문화회관과 세종대왕 동상 사이,
직사각형의 넓은 공간.

굴착기가 흙을 퍼 나르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감사의 정원' 공사 현장입니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지난 2월,

서울시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22개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며,
이 곳에 참전국 수와 우리나라를 합한 총 23개의
검은 화강암 조형물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공모를 통해 확정됐다는 조형물은
가로 9미터, 세로 1미터, 높이 7미터에 달하는 'ㄴ' 자 형태,
총을 들고 경례하는 '받들어총' 자세를 형상화했습니다.

◀ S Y N ▶ 오세훈 / 서울시장 (2월 3일)
"의장대 사열을 모티브로 삼아서 마치 ‘받들어총’을 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 연상이 되실 겁니다. 참전용사들에 대한 우리의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탄핵과 대선, 정권교체 속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반대의 목소리도 본격적으로 터져나왔습니다.

현재 부산엔 전사한 유엔군 장병들이 안치된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이 있고, 가까이 용산 전쟁기념관 등
6.25 참전국과 장병을 예우하는 시설물이 82곳에 이를 정도로 많습니다.

왜 광화문 광장에 또 설치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 I N T ▶ 윤경로 / 전 한성대 총장·역사학자
"그건 전쟁기념관에도 있고 또 그런 곳이 여러 곳에 많아요. 근데 바로 이 광화문 네거리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이곳에다 그런 조형물을 만든다는 거는 우리가 분단을 극복해야 할 이런 시대정신에 전혀 맞지 않는다.“

스트레이트는 서울시가 이 사업을 추진한 과정을
자세히 따져봤습니다.

먼저 오세훈 시장이 처음에 밝혔던 사업 계획.

22개 참전국으로부터 각각 돌을 기증받아 그 돌을 재료로
받들어총 조형물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2월 28일,
오 시장은 22개국 대사들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가로 세로 높이 2미터 크기의 돌을
기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기증 시한은 6월 말로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석달 뒤인 5월 30일,
오 시장은 다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전과 달랐습니다.

크기를 대폭 줄여 폭 0.75m 정도의 돌이라도 보내달라며
시한도 11월 말로 늘려잡았습니다.

기증이 어렵다면 돌을 살 수 있는 업체라도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0월 말까지 돌을 기증한 걸로 확인된 나라는
그리스 1곳, 기증 의사를 밝힌 나라는 8곳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필리핀은
기증이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남아공 등 3개국으로부터는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서울시는 일단 시 예산으로
인도산 석재를 수입해 조형물을 만들고
나중에라도 기증을 받으면
갈아끼우는 방식으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 S Y N ▶ 차재경 /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회장
"수차례 협조 요청을 하며 독촉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리스 한 곳만 돌을 보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참전국들의 냉담한 반응에
사업 일부을 자체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받들어총' 조형물 지하에 대형 스크린과 카메라 등을 설치해
참전국 시민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국가들에 현지 설치 비용을 부담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국가도 화답해오지 않으면서
이 계획은 취소됐습니다.

공사업체 선정을 두고도 잡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서울시가 낸 입찰 공고.

사업비 40억원 규모, 석재를 '직접생산'할 수 있는 곳만
참여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따낸 곳은,
지난 2009년 외주 생산 시스템으로 바꾼 뒤
석재 조형물을 직접 생산하지 않았던 업체였습니다.

◀ S Y N ▶ OO석재 관계자
"다 외주죠. 다른 가공업체에다가 파트별로 이렇게 주는 거예요, 물건을.“

스트레이트 확인 결과,
선정된 업체는 입찰 당시 경쟁업체보다 공사 가격을
10억 원이나 비싸게 써냈지만, 수입 실적 등에서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서울시가 참전국으로부터 석재를 기증받지 못하게 되자
돌을 수입하기로 결정했고,
따라서 당초 사업 취지와 달리, 장기간 직접 생산을 안했어도
수입 실적이 좋은 업체를 선정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가격 점수보다는 전문성과 기술성 등
사업의 종합적 이해도를 공정하게 평가해
적법하게 업체를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
감사의 정원 부지는 지목상 '도로'로, 국가 소유의 땅입니다.

국유지에 영구시설물을 설치하는 건
원칙적으로 정부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최근 국토부 장관은 서울시로부터
협조 공문이 왔다는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며,
법령 위반사항이 있는지 따져보겠다고 밝혔습니다.

◀ S Y N ▶ 김윤덕 / 국토교통부 장관 (국회 국토교통위, 12월 10일)
"공문으로 이 문제를 처리했다고 보고받지 못했고요.“

국토부는 서울시가 구두로만 문의를 해왔을 뿐
공식 문서로 협의한 적은 없었던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향후, 국토부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위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조형물이 영구시설물도 아닌데다,
이미 국토부와 협의를 마쳤다는 입장입니다.

◀ S Y N ▶ 오세훈 / 서울시장 (12월 10일)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이 이미 법적으로 필요한 절차를 다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민주당의 요청에 의해서 행정의 탈을 쓰고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 임상재 기자 ▶

서울시는 받들어총 조형물을 비롯한
감사의 정원 조성을 밀어붙이면서
시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서울 시민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
감사의 정원 사업을 지지하는 시민 여론이 확인됐다는 겁니다.

과연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시민 여론을 조사했는지,
스트레이트는 서울시의 여론 수렴 과정을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 '속도전' 밀어붙이기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에
국가상징 조형물을 만들겠다고 나선 건
지난해 6월 25일.

100미터 높이의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고,
가로 21미터, 세로 14미터 크기의 태극기를 영구 게시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6·25 참전 용사들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까지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권위적이고 시대 착오적 발상이란 비난이 쏟아지자,
서울시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 S Y N ▶ 오세훈 / 서울시장 (2024년 7월 11일)
"태극기에 대해서 그렇게 어떤 선입견이 형성돼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놀랍게 받아들였는데요.“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민들의 아이디어 제안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뒤, 서울시는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습니다.

1차 조사는 작년 7월부터 한달간 서울시 홈페이지 등에
주관식으로 의견을 남기는 형식이었습니다.

국가상징공간을 채울 상징물을 제안받았는데,
태극기, 무궁화, 국새 순으로 추천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 말, 서울시는 시민을 대상으로
첫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총 세 문항.

첫번째는 단순히 참전국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지만 물었습니다.

당연히 필요하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습니다.

두번째는 '세종로 일대'에 22개 참전국 청년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데 동의하는지 묻는 질문.

세번째는 국가상징공간을 '세종로 일대'에 조성하면
국가이미지가 좋아질 걸로 보는지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우선, 1차 홈페이지 조사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6.25 참전국' 이라는 주제가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세가지 문항 어디에도 광화문 광장을 언급하지 않았고,
세종로 일대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습니다.

결과는 동의함 49.5%, 동의하지 않음 42.6%.

서울시는 이 조사결과를 근거로,
곧바로 참전국 용사들을 기념하는
광화문 광장 조형물 설계 공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서울시의회는
시민 여론조사와 전문가 인터뷰를 포함한
연구용역을 시행했습니다.

연구용역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먼저 시민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패널 여론조사결과.

광화문 광장에 6.25 참전용사를 기억하기 위한
국가상징공간을 설치하는데 대해
찬성의견이 68% 반대 32%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광화문 광장에 국가상징 조형물을 설치한다면
어떤 주제가 가장 적절한지를 묻는 질문엔,
독립운동가들이란 답변이 38.6%로 참전 용사란 답변보다
15%포인트 이상 많았습니다.

또 광화문광장이 어떤 모습이 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엔
'휴식공간' 이라는 답이 1위였습니다.

찬반 여부를 묻는 질문은
6.25 참전국용사 기념공간에 대한 질문이 유일했고,
가장 많은 시민이 꼽은 독립운동가 기념공간에 대해선
찬반 여론을 묻지 않은 조사였습니다.

◀ I N T ▶ 이병도 / 서울시의원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야 되는데 한 문항에서 찬성 의견이 높았다고 해서 그것들이 시민들이 동의했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딱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가지고 발췌해서 ‘이것 봐라, 이렇게 찬성한 비율이 높다, 이것은 해도 된다’라고 하는 것들은 너무 좀 자의적인 해석이고요.“

결국 서울시가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시민 의견과 용역보고서 내용을 원하는 방향으로만 해석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 I N T ▶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서울시는 사실 객관적인 여론조사 방법을 전혀 동원하지 않았었고 자기들끼리 그냥 알음알음으로 하는 조사 같은 것으로 지금 갈음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난달 한 시민단체가 의뢰한 여론 조사에선,
응답자의 82.3%가 감사의 정원 사업 추진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10명 중 6명은 감사의 정원 사업에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서울시가 사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정황도 확인됩니다.

광화문 광장 조형물을 건설하려면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방재정투자심사위원회'의 사업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서울시는 올해 6월,
'받들어총' 조형물을 설치하겠다며
277억 원의 예산을 쓰겠다는 사업계획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신규 심사가 아닌
재심사 형식으로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1년전 광화문 광장에 대형 태극기게양대를 설치하는
148억 원의 예산을 이미 승인 받았기 때문에,
재심사가 맞다는 논리였습니다.

◀ I N T ▶ 임규호 / 서울시의원
"신규 심사는 굉장히 엄격한 절차를 더 거쳐야 되는 것이고 재심사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초기에 심사에서 요구되었던 거를 보완만 하면 의결해 주는 절차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게 형식적으로나 아니면 명분적으로도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가 확보한 당시 회의록입니다.

한 심사위원은 "처음 심사와 전혀 다르니
새로운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고,

심사 위원장 역시 "6.25 참전 용사 관련으로 바뀐 건
큰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결과는 '조건부 통과'였습니다.

이미 설계 공모를 통해 당선작이 선정됐고
준공 날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결정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굳이 바꾸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고집을 두고,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 I N T ▶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감사의 정원은) 그 완공 날짜를 보면 바로 지방선거 직전에 완공하게 돼 있어요. 그럼 그것만 보더라도 오세훈 시장이, 본인이 차기 서울시장을 염두에 두고 밀어붙이는 치적 쌓기용 사업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라는 거죠.“

하지만 오 시장은 자신에 대한 정치 공세에 불과할 뿐이라며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종묘와 광화문 광장.
서울시와 서울시민만이 아닌
대한민국과 대한국민 모두의 역사적 공간입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문화유산.

그리고, 격동의 현대사 순간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모였던,
결국 빛나는 민주주의를 지켜낸 낸 광장.

◀ I N T ▶ 이민주 / 2016년 촛불집회 참여
"평화적인 시위를 보여준 평화의 장소인데. 촛불은 바람이 불어도 어떤 역경이 있어도 꺼지지 않는다는 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 I N T ▶ 김순길 /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에서 그 진실의 목소리 이런 것들을 요구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찬반 의견이 엇갈리지만,
분명한 건, 특정세력이나 특정 가치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바뀌어서는 안 될,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공간이라는 사실입니다.

◀ E N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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