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청산의 사각지대 '허화평 재단'의 비밀
2026.10.1830
■ 허화평ㄷ, 아흔살에도 망언
지난 8월,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극우 단체들과 개최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포럼.
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두둔하고 역사를 거꾸로 뒤집는 망언들이 쏟아집니다.
◀ S Y N ▶ 김용삼 펜앤마이크 기자 (8월 13일)
"무조건 전두환이라는 사람에게 다 뒤집어씌웠습니다. 지금도 뭐라 그래요? ‘전두환 살인마’ 이렇게 얘기하죠?"
◀ S Y N ▶ 주동식 전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 (8월 13일)
"5·18 참배도 저는 재검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다못한 시민들이 항의해 급기야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 EFFECT ▶
"살인마 전두환이가 어떻게! 4·19 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 이승만…
<조용히 가 이 XX야!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가!>"
이를 맨 앞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 남성.
전두환 정권 설계자를 자처하는 바로 허화평입니다.
◀ S Y N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2018년 9월 17일)
"5공을 이야기할 때 허화평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거야. 내가 그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허 씨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의 군사 반란을 최전선에서 도왔던 '문일평'의 실제 인물.
육사 17기 하나회 핵심 멤버,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
허삼수·허문도와 함께 이른바 ‘쓰리 허’로 불렸습니다.
전두환 정권에선 청와대 정무수석 같은 핵심 요직을 거쳤고 정치인으로 변신해 재선의원까지 지냈습니다.
◀ S Y N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9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러다 보니 전두환 대통령 머리에서 나오는 건 다 허화평이하고 이거 의논된 거 아닌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탄압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허화평.
그러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고 아흔살이 된 지금까지 그는 사죄는 커녕 궤변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 S Y N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2013년 3월 19일)
"희생자가 용서할 때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사실은. 내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부모가 찾아가서 용서했을 때 우리 국민들이 받는 이 감동이 크죠, 사실은."
◀ S Y N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5월 12일)
"광주 사태 때 구호는 계엄 해제 김대중 석방이었어요. 민주화 구호는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 수행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 조명아 기자 ▶
반성을 모르는 12·12 군사반란의 핵심 주동자 허화평 씨,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7백억 넘는 부동산을 굴리는 공익재단의 이사장 자리에 20년째 앉아 있습니다.
이 재단의 재산은 어디서 왔고, 누구를 위해 쓰이고 있을까요.
스트레이트가 추적했습니다.
서울 송파에 위치한 16층짜리 고층 빌딩.
지하철역과 대단지 아파트를 끼고 있어 시세가 6백억 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알짜배기 건물입니다.
◀ S Y N ▶ 부동산 관계자
"임대가 없어서 못 나갈 정도로 여기 위치도 좋고 아파트 재건축 진행이 되고 이러면 이제 더 좋아지겠죠.“
서울 종로에도 150억 원대로 추정되는 4층짜리 건물이 있습니다.
두 건물의 소유주는 공익법인 미래한국재단.
허 씨가 2007년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곳입니다.
두 빌딩에서 나오는 임대 관련 수익만 연간 25억 원에 달합니다.
이 수익은 어떻게 쓰여지고 있을까.
재단의 예·결산 자료를 분석해봤습니다.
정관에 적힌 재단의 공식 설립 목적은 '학술 연구'와 '장학 사업'.
그런데 2025년 재단의 전체 예산 25억원 중 연구 사업과 장학 사업에 잡아놓은 돈은 2억 원뿐,
전체의 8%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다 쓰지 않았습니다.
실제 지출한 돈은 장학금 6천1백만 원, 연구비 5천9백만 원, 기부금 2천6백만 원, 모두 합쳐 1억 4천6백만 원으로 전체 수익의 6%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근 3년치를 봐도 마찬가지.
다른 공익재단들이 평균적으로수익의 71% 가량을 공익사업에 쓰는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되는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을 쓰고 있는 겁니다.
◀ S Y N ▶ 원동혁 공인회계사
"학술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들이랑 비교해 봤을 때 이런 (재단 목적에 맞는)지출 비용 자체가 너무 과도하게 낮다.“
그렇다면 나머지 예산은 어디에 쓰는 걸까.
먼저 인건비.
허화평 이사장 몫으로 책정된 인건비만 약 1억 5천5백만 원. 업무추진비와 차량유지비 등을 더하면 2억 원 안팎입니다.
재단이 공익사업 전체에 실제로 쓴 돈보다 허화평 이사장 한 사람이 가져가는 돈이 더 많은 겁니다.
직원 5명의 급여까지 합치면 인건비성으로 가져가는 돈은 7억 6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공익사업비의 다섯 배가 넘습니다.
인건비 보다 더 큰 돈이 들어가는 곳은 건물 관리비.
지난해 빌딩 관리비로 책정한 예산이 14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56%에 달합니다.
◀ S Y N ▶ 원동혁 공인회계사
"장학금이나 학술 보고서, 간행물 발행 이런 것들인 건데 이런 것은 안 하고. 구성비가 완전히 정반대로 돼 있다고 보시면 돼요. 사실상은 그냥 관리 비용인 거죠.“
이 중 6억 원은 16층짜리 송파 빌딩의 위탁관리비.
그런데 이 돈을 받는 업체의 대표는 다름 아닌 재단의 현직 행정처장, 곽 모 씨였습니다.
곽 씨는 재단설립 초기부터 일해 온 허화평 이사장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 S Y N ▶ 송파 빌딩 관리업체 관계자
(재단의 그 직원분들이 이사나 대표로 포진하신 이유는 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모르겠는데 왜 그렇게 된 건지.“
그런데 재단 인사들이 건물 관리에 관여하고 있는 곳은 여기뿐이 아닙니다.
재단이 직접 분양했던 1천 세대 규모의 판교 오피스텔.
연간 20억 원 규모의 관리비를 집행하고 주차장과 시설 임대, 용역업체 선정을 좌우하는 이 건물 관리위원회에는 재단 전·현직 직원과 5공 당시 청와대 비서실 직원 등이 줄줄이 이름을 올려왔습니다.
현 관리인도 1985년부터 2017년까지 재단에서 근무했던 변 모 씨입니다.
◀ S Y N ▶ 이창수 오피스텔 소유주
"그냥 모든 안건 통과시키고 밥 먹으러 가는 게 일이에요. 경비 마음대로 써요. 밥 먹으러 마음대로 가고. 술 먹고. 그다음에 수당 다 지급하고. 대신 대필하고, 오지도 않았는데. 그게 다 발각이 된 거죠.“
이들은 관리위원 선임 절차에서 하자가 인정돼 1심에서 선임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한 뒤 여전히 관리위원직을 유지중입니다.
◀ S Y N ▶ ☎ 오피스텔 소유주
"전두환이 부하 직원들한테 콩고물을 나눠주면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엄청 심하게 끝까지 충성했던 것처럼 지금 허화평도 재정적인 혜택을 주면서…“
얼마 되지 않는 공익사업비마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재단 직원이 대표로 있는 민간 대북 지원 단체에 기부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전두환을 옹호하는 칼럼을 쓴 인사가 운영하는 단체에도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 S Y N ▶ 조영관 변호사·세무사
"이사와 임원진들이 평생 계속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된다고 하면 개인 회사보다 세금은 덜 내면서 (공익법인의) 혜택은 다 받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공익법인의 껍데기를 쓴 부동산 투자 회사로…“
그렇다면 이 수상한 재단은 애초 어떻게 만들어진 곳일까.
재단 탄생의 배경엔 '삼청교육대'로 상징되는 전두환 신군부의 이른바 '사회정화운동'이 있습니다.
신군부가 폭압 정치를 하던 1981년 당시 사회정화위원회 산하에 설립된 겁니다.
◀ S Y N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자
"5공 정권, 전두환 정권이 가장 썩은 정권, 가장 부패한 정권인데 정화를 얘기했고,이념적인 부분들을 연구해서 그걸 이제 국민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기관으로 만들어졌고.“
그리고 2년 뒤 전두환 정권은 이 재단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재벌들에게 손을 벌립니다.
스트레이트는 재단의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의 1983년 당시 '출연 기부금 내역서'를 단독 입수했습니다.
당시 연구소가 재벌들로부터 받은 금액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문서입니다.
연구소 설립자는 전두환.
당시 재계를 주름잡던 재벌 총수 12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롯데그룹 신격호, 한진 조중훈, 대우 김우중, 럭키 금성 구자경 회장 등 '성명' 칸에 기업명, 대표자에 총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5공 정권은 독립 사옥이 필요하다며 재벌들에게 손을 벌립니다.
◀ S Y N ▶ 김성기 당시 사회정화위원장 (이사회 회의록/음성대독)
"사무실을 임대로 사용하는 처지에서 우수 연구원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독립 건물의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 S Y N ▶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 (이사회 회의록/음성대독)
"전혀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기꺼이 출연하겠습니다.“
이들이 낸 돈은 31억 원.
정부가 1988년까지 지원한 총 23억원보다 더 큰 액수로, 당시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100채를 살 수 있었던 거액입니다.
◀ S Y N ▶ 조영관 변호사·세무사
"(기업 총수) 출연자들이 먼저 이런 것들을 논의해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 당시에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지급된 금원이라고 보는 것이 그 실질에 맞고…“
이 돈을 바탕으로 1988년 경기도 성남시 4만 6천 제곱미터, 만 평이 넘는 부지에 독립 사옥을 마련한 연구소.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뜻밖의 개발 호재를 맞습니다.
2004년 판교 신도시 개발로 땅이 수용되면서 연구소는 무려 230억 원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 S Y N ▶ 허회평 당시 미래한국재단 소장 (이사회 회의록 AI 대독)
"(2000년대 초)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동산을 처분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재단은 직접 시행사로 나서 부동산 개발에 뛰어듭니다.
판교역 인근 1천 세대 규모의 오피스텔을 분양해 매출만 3천억 원이 넘었고, 이 때 얻은 수익 3백 억으로 서울 송파의 대형 빌딩을 사들였습니다.
재단의 재산 가치가 치솟는 동안 허화평의 재단 장악력도 커졌습니다.
2005년 '현대사회연구소'는 '미래한국재단'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부동산 임대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연구소장이었던 허화평 씨가 이사장에 취임합니다.
표면적으론 당시 88세였던 전임 이사장이 고령으로 퇴임했다는게 이유였지만, 부동산 투자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다는 게 전임 이사장 가족의 주장입니다.
◀ S Y N ▶ ☎ 당시 이사장 자녀
"재단에 이제 돈이 있는 걸 굴리는 과정에서 아버님한테는 얘기도 안 하고 어디다 투자를 막하고 이런 게 있었나 봐요. 저희 아버님은 돈에 관심이 없으신 분이니까, ‘나는 더 이상 안 한다’…“
이후 재단의 법인 등기부엔 눈에 띄는 조항이 등장합니다.
'허화평 이사 외에는 그 누구도 대표권이 없다' 사실상 재단의 모든 권한을 허화평 한 사람이 갖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재단 사무실은 어떤 모습일까, 주소지로 가봤습니다.
재단이 분양했던 판교 오피스텔 안에 있는 31 제곱미터, 9평 남짓한 원룸 한 칸이었습니다.
◀ S Y N ▶
"계세요? MBC에서 나왔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직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면, 허화평 이사장의 집무실은 재단 소유의 서울 종로 빌딩.
4층 꼭대기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허화평씨 개인 명의 자산도 수백억대일 걸로 추정됩니다.
허 씨가 현재 거주하는 서울 종로의 1,097제곱미터, 330평 짜리 대저택은 현재 시가로 100억원이 넘습니다.
12·12 사태 이듬해인 1980년 10월 구매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주택은 이후 5층 짜리 건물로 바뀌었고 지난 2024년에 184억 원에 매각했습니다.
허화평 개인 자산 최소 2백억 이상에 미래한국재단 명의의 자산도 7백억이 넘습니다.
■ 허화평 '재단 사유화' 논란
스트레이트팀은 서울 종로 재단 이사장 사무실로 허화평 씨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사흘을 기다린 끝에 사무실에서 나온 허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조명아 기자, 허화평 이사장 엠부시 ▶
조명아: 재단 사유화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사: 지금 예의 좀 지키세요.
조명아: 그리고 이 재단 5공 재벌들의 돈으로 만들어졌잖아요. 국고 환수하실 계획 없으신가요?
기사: 여보세요, 예의 좀 지키세요.
조명아: 환수할 계획 없으신가요?
기사: 가야돼요.
조명아: 그 공익 목적으로 쓰는 돈이…
허화평: "한마디만 할게요. 89년도 내가 여기 왔을 때부터 계속 MBC가 나를 괴롭혔다고. 참고로 하세요."
조명아: 공익 목적으로 쓰는 돈이 이사장님 월급보다도 적은데
허화평: "아니, 아니 다른 데 가서 다, 다른 데 가서 다 물어보세요."
조명아: 이게 재단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거 맞나요?
기사: 지금 가야 되고 예의 좀 지키세요.
허화평: "지금 가야 될 때가 있어요."
조명아: 재단 사유화 의혹에 대해서는 말씀 안 해 주실 건가요? 왜 출연자를 재단 출연자를 왜 이사장님 이름으로 바꾼 거죠? 작년부터 바뀌었던데 해명해 주실 수 없나요?
허화평: "거짓말 보도는 하지 마세요. 진실 보도를 하시라고."
조명아: 저희가 그럼 묻는 질문에 대답 좀 해 주실 수 없을까요?
허화평: "진실 보도를 해 주세요."
조명아: 국고 환수 계획 없으신가요? 일해재단처럼? 이사장님! 환수 계획 발표 안 하시나요?
법이 바뀌어서 이제 추징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계획 언제 밝혀주실 계획 없으신가요?
질문에는 모두 답하지 않은 허화평 씨.
가로막았던 전담 수행원과 허 씨를 태우고 떠난 최고급 승용차는, 모두 공익재단 이사장이라는 지위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5공 신군부가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만든 또 다른 재단, 1983년 출범한 '일해 재단'입니다.
출연 기부금만 약 6백억 원에 달했습니다.
◀ S Y N ▶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 (일해재단 청문회, 1988년 11월 9일)
"두 번째부터는 내라니까 내는 게 편할 거 같아서 낸 겁니다.“
5공 청산 과정에서도 이 재단들의 처리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 S Y N ▶ MBC 뉴스데스크 (1988년 4월 13일)
"일해연구소와 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회연구소 등 그동안 논란이 잦았던 연구단체들을 서울대로 이관시키는 방안이 정부와 재계 일각에서 신중히 검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40년이 흐른 지금, 두 재단의 운명은 엇갈렸습니다.
일해재단은 국가에 귀속돼 '세종연구소'로 탈바꿈했지만, 현대사회연구소는 정치적 격변기에 슬그머니 청산 대상에서 빠진 겁니다.
◀ S Y N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자
"일해재단은 그래도 해결했지만, 나머지가 3당 합당되고 뭐 보수 대연합하고 그렇게 되니까 묻혀버린 것들이 이제 한둘이 아닌데 허화평도 이제 거기에 묻혀 있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씨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연구소장을 꿰찼던 허 씨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 S Y N ▶ 허화평 (국회 언론청문회, 1988일 11월 22일)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실 때 신원보증인이 누구셨나요?]
"지금 (노태우) 대통령 각하하고 정호용 장군. 두 분입니다.“
이후 허 씨는 재단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 EFFECT ▶ 현대사회연구소노조 승리쟁취결의대회 (1988년 10월 22일)
"5공 사회 청산하자! 청산하자!“
연구 자율성을 요구하며 맞선 21명을 무더기 해고하고 연구소를 장악했고,
◀ S Y N ▶ 이석희 / 당시 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노조 부위원장
"절대 다수의 연구들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뭐 연구라기보다는 그 몇 가지 이제 그냥…(명맥을 유지하는 정도?) 그렇죠 그 정도였었죠.“
부동산으로 재단 재산이 불어난 뒤엔 결국 이사장 자리까지 차지한 겁니다.
재단 설립 당시 돈 한 푼 낸 적 없는 허 씨가 작년엔 심지어 국세청 공시자료에 자신을 '출연인'으로 신고한 사실도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재단 운영권이 다음 세대에까지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 S Y N ▶ 조영관 변호사·세무사
"자기 돈 한 푼도 들이지 않은 상황에서 큰 재산이 축적된 재단법인, 앞으로 뭐 해산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게 물려주더라도 이사회에 이사 자리만 물려주면 되는 거거든요.“
취재가 시작되자 미래한국재단은 출연인을 허화평으로 신청한 건 착오였다며 수정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5공 청문회와 청산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미래한국재단.
이제 그 재산의 불법성을 따져 국가가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길이 열렸습니다.
지난 8월, 국회 문턱을 넘은 이른바 '독립몰수제'.
헌정질서 파괴로 축적한 불법 수익은 끝까지 추적해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내년 9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신군부의 잔재를 회수할 길이 열린 건데, 서울중앙지방 공소청 범죄수익환수부는 허 씨를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재단 자산 환수 조치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 S Y N ▶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변호사
"5공 치하에서 이유도 없이 대기업들이 이 많은 돈을 냈을 때는 결국은 대통령의 권력이 무서웠든, 직무상 연관 관계가 됐든 간에 어떤 그 뇌물죄로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몰수 추징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군사 반란 핵심으로 감옥까지 갔지만 군사정권이 걷은 돈으로 만든 수백억 자산의 재단 이사장 지위를 지금까지도 누리고 있는 허 씨.
이젠 국가가 역사의 부조리가 만든 권력과 재산의 뿌리를 끝까지 찾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할 때입니다.
◀ S Y N ▶ 김용만 5·18 유공자·서울기념사업회 이사
"5·18 유공자들은 직장에서 쫓겨났고 사업하던 사람들은 거래처를 잃었고 이러면서 굉장히 경제적인 핍박을 당했고, 우리를 죽이고 찌르고 때리고 짓밟았던 놈들은 빌딩 몇 채씩 가지고 떵떵거리면서 살며…그걸 보고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