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쟁 피해 왔다 다리 절단…손가락 네 개엔 600만 원

2026.11.0119

■ 전쟁 피해 왔다 다리 절단

◀ S Y N ▶ 응급실 현장음
“다리를 많이 다쳐서 여기 자를 거예요. (연결, 연결하면?) 연결 안 돼요. 이거 안하면 진짜 사망할 수 있어요.“

하천 정비 공사가 한창이던 오후 3시 반.
거대한 15톤 굴착기 한 대가 배수로 쪽으로 넘어졌습니다.

그 아래, 사람이 있었습니다.

◀ S Y N ▶ 사고 현장음
“(응급조치는 다 했냐?) 아뇨, 아뇨.“

러시아 국적의 서른여덟 살 아카둘로 씨.

비자 없이 한국에 머물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이 현장에 출근한 첫날이었습니다.

◀ S Y N ▶ 알리 / 아카둘로 동생
“다른 포클레인 오라 했어. 다른 데 있어. 30분, 형님 삽 눌려 있었잖아“

굴착기 삽에 깔려 있던 시간은 40분 이상.

그 사이 오른쪽 다리의 동맥이 손상됐습니다.

사고 24시간 40분 뒤, 결국 무릎 위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한 달 동안 여덟 차례나 더 수술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
아카둘로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전남 영암의 월세 20만 원짜리 작은 방입니다.

◀ I N T ▶ 아카둘로 (러시아, 38세)
“여기 밥 없어요. 갇혀 있어요. 계속해서 여기 하루하루 여기 있어요. 안 좋아.“

그나마 산재가 사고 49일 만에 승인돼, 치료비와 임금 일부는 보전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술받은 병원은 대전.

전남 영암에서 편도 200km가 넘는 거리를 택시로 오가다보니
한 번 왕복에 45만 원.

지금까지 택시비로만 600만 원을 썼습니다.

◀ I N T ▶ 아카둘로 / 알리
“[아카둘로] 택시 갔다 왔다요. 병원. 돈 다 저기 들어가요. 대전 갔다 왔다요.
[기자] 대전?
[알리] 을지병원. 수술한 병원.  KTX 우리 못해요. 너무너무 불편하죠.“

의족은 더 큰 걱정입니다.

일상생활과 걷기에 불편이 덜한 의족은 2천만 원이 넘습니다.

◀ I N T ▶ 알리
“우리 10개월을 넘어서 아직 의족을 못 맞췄어. 돈이 없으니까 어떻게 해. 2천만 원.“

러시아에 있는 아내와 네 아이를 수십년 부양해야 할 가장인데,

앞으로 못 벌게 된 소득은 누가 보상해줄까.

사고 책임이 있는 업체가 책임져야 하는데,
아카둘로 씨를 덮친 굴착기는 그를 고용한 회사가 아닌, 다른 업체의 장비였습니다.

아카둘로 씨를 고용한 회사는 사고 당일 이후론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 I N T ▶ 알리 / 아카둘로
“[알리] 회사에서 처음 날에 하루 같이 있었어. 그 반장. 아무도 안 나왔어.
[아카둘로] 동생, 동생 같이 있어요. 계속해서. 다른 데 사람 안 왔어요.“

심지어 아직 배상은 못받았는데, 법무법인에 사건을 맡겼다가 해지하느라
위약금만 5백만 원이나 먼저 물었습니다.

◀ S Y N ▶알리
“(사건 맡긴 법무법인에서) 전화 오셔서 '아카둘로, 우리 먼저 (1차 위로금으로) 100만 원 드릴 거에요. 회사에서 100만 원 주고 사인, 합의 사인을 해주세요.' 우리 위험해서 사인 안 했어.“

취재진을 만난 날, 통장에 남은 돈은 5만 원뿐이었습니다.

◀ I N T ▶ 아카둘로
“[기자] 돈은 있어요? 생활할 돈.
[아카둘로] 지금 돈 없어요.“

아카둘로 씨가 한국에 들어온 건 2023년 7월.

◀ I N T ▶ 알리
“형님 전쟁 안 보낼 때 오라고 했으니까요. 형님 앞으로 아기 네 명 있으니까...
[기자] 안 보내려고?
[알리] 지금 러시아 가면 또 바로 전쟁 보내져야 돼요.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을 피해 온 그가 다리를 잃은 곳은, 전쟁터가 아닌 한국의 일터였습니다.

◀ I N T ▶ 아카둘로
“[기자] 고향 가족들도 아빠가 이렇게 다친 걸 알아요?
[아카둘로] 예.“

걱정은 또 있습니다.

다리와 노동력 상실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러시아로 돌아갈텐데,
산재치료를 위해 받은 임시비자는 이달 말까지.

◀ I N T ▶ 아카둘로 / 알리
“[아카둘로] 한 달 있어요. 지금. 끝났어요.
[알리] 근데 불법 체류가 (되면) 회사에서 돈 안 준다. 그러면 큰 일 나, 우리.“

혹시라도 비자 연장이 안되면 배상 절차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쫓겨나야 합니다.

◀ I N T ▶ 아카둘로 (휴대전화 통역 앱)
“제 사건이 최대한 빨리 마무리되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차주혁 기자 ▶

그렇다면 아카둘로 씨와 다르게
정식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온 노동자들의 사정은 어떨까요.

이들도 몸이 다쳤을 때 회사가 다시 고용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치료 받을 새도 없이 일자리를 잃고 쫓겨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보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심지어 산재 신청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 손가락 네 개에 600만 원

네팔에서 온 비렌드라 씨는 경기 화성의 철근 가공 공장에서
왼손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됐습니다.

접합수술을 받았지만, 검지는 괴사돼 다시 잘라냈고 약지도 끝마디를 잃었습니다.

회사와는 600만 원에 합의했습니다.

합의 자리에 있던 건 회사 대표와 부장, 비렌드라씨 세 사람뿐.

네팔인 통역과는 전화로만 소통했습니다.

취재진이 그 합의서를 다시 보여주고,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 S Y N ▶ 비렌드라 (네팔, 31세)
“[비렌드라] "24년 3월 4일 갑의 공장에서 발생한 을의 손가락 절단과..."
[기자] 제목을 한번.
[비렌드라] "합의서".
[기자] 합의서가 무슨 뜻인지?
[통역] 합의서가 뭔지 알았나요?
[비렌드라] 저는 몰랐어요.“

한국어로만 작성된 합의서.

600만 원을 받는 대신 '일체의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비렌드라 씨는 합의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금액만 손글씨로 적혀 있는 것도 석연치 않습니다.

◀ I N T ▶ 비렌드라
“[비렌드라] 6백만 원은 사무실 직원이 직접 적은 거예요.
[통역] 아, 그 여자, 그 여자.
[비렌드라] 먼저 저한테 여기 사인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분이 여기 직접 적은 거예요.“ 

손가락 하나에 150만 원.
어떤 기준으로 정한건 지 회사에 물었습니다.

◀ S Y N ▶ 회사 대표
“6백, 이 금액이 그냥 나온 게 아니고, 그리고 우리가 '6개월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할 테니까 그 금액도 상당하다. 어떻게 할래?'“

회사는 자신들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S Y N ▶ 회사 대표
“본인이 절단기를 작동을 시키고 본인이 손가락을 집어넣은 거예요. 기계적인 결함이 아니라 본인의 실수인데…“

하지만 합의 당일 녹취록을 살펴보니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S Y N ▶ 통화녹취록 (AI 음성대역)
“[부장] "근데 사실 이게 기계 자체에 안전장치가 있지는 않다."
[회사 대표] 없잖아. 어.“

산재 신청조차 막는 회사도 있습니다.

경남 김해의 이슬람 기도방.

예배가 끝나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일하다 다친 뒤 일자리도, 잠잘 곳도 잃은 이주노동자들입니다.

◀ I N T ▶ 샤메쿨 / 알따끄와 이슬람센터장
“[기자] 회사에서 일하다 다친 사람들도 많이 오시나요?
[샤메쿨] 예, 많이 옵니다.
[기자] 얼마나 많이 오나요? 그런분들?
[샤메쿨] 보통 (한 달에) 5명에서 6명 들어와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스물여덟 살 라이한 씨는
취재진이 찾아가기 하루 전 이곳에 왔습니다.

지난해 3월, 경기도 포천의 한 공장에서
왼손이 기계에 말려 들어가 뼈가 부러졌습니다.

공장장이 처음 꺼낸 말은 걱정도, 위로도 아니었습니다
.
◀ I N T ▶ 라이한 (방글라데시, 28세)
“'내일부터 일해'. 많이 아팠기 때문에 제가 ‘1주, 2주 휴가 주세요. 돈 안 필요해요. 휴가 주세요'. 그러면 '안 돼, 안 돼, 일 안 하면 (너희) 나라 가'.“

다친 손으로 사흘을 더 일한 라이한에게 회사는 ‘산재포기 각서’를 내밀었습니다.

회사가 치료비를 줄테니 산재는 신청하지 말라는 조건.

◀ I N T ▶ 라이한
“'진료비를 더 줄까요? 그러면 산재 안 돼요'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러면 제가 또 어그리먼트(동의) 했어요.“

하지만 치료비는 받지 못했습니다.

◀ I N T ▶ 라이한
“진료비를 안줬어요. 안 받았어요. 진료비 많이 비싸요. 여기 MRI 찍을 때 건강보험이 보통 안 되니까 많이 들어요. 55만 원.“

더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던 라이한씨는 석 달쯤 지나 산재를 신청했고,
'손목 골절'과 '연골복합체 손상'을 산재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제출한 조사표엔 ‘살짝 삐끗함’이라고 적혀 있고,
그것도 '작업자 과실'이라고 돼있습니다.

산재 신청은 더 큰 화를 불렀습니다.

회사가 취업비자 연장을 거부한 겁니다.

◀ I N T ▶ 라이한
“저한테 많이 '왜 (산재) 신청했어요? 많이 벌금 나왔어요'. 이것 때문에 제 연장, 비자 연장 안 줬어요.“

일자리를 잃자, 회사 기숙사에서도 나와야 했습니다.

그 뒤로 포천에서 김포로, 다시 목포에서 김해로.

◀ I N T ▶ 샤메쿨 / 알따끄와 이슬람센터장
“하고 싶냐, 안 하고 싶지. 불법체류자. 자기 비자 있으면 고향도 가고, 가족도 만나고, 왔다 갔다 하고. 누가 하고 싶어요. 불법체류자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산재를 신청한 뒤 일자리를 잃었다는 라이한.

그렇다면 산재를 인정받으면, 적어도 치료비 걱정은 덜 수 있을까.

미얀마에서 온 마흔두 살 탄진툰 씨는
지난 7월 버스를 정비하다 왼발이 깔렸습니다.

발가락을 잃을 뻔한 큰 사고라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병원비 부담까지 모두 덜진 못했습니다.

◀ I N T ▶ 탄진툰 (미얀마, 42세)
“[탄진툰] 병원비는 1천만 원 나왔어요. 제가 270(만 원) 정도 제가 해야 돼요.
[기자] 비급여 항목. 270만 원은 돈이 있었어요?
[탄진툰] 제가 없는데, 제가 여기 친구한테 제가 했고요.
[기자] 빌려서?
[탄진툰] 예예, 빌려...“

사고 이후에 받은 급여명세서.

급여총액 0원, 보험료 공제 후 실수령액은 마이너스 9만 2천 원입니다.

◀ I N T ▶ 탄진툰
“[기자] 회사에서 따로 이렇게 돈을 받은 게 있어요?
[탄진툰] 제가 다쳤는데 한 명은 5만 원, 5만 원 정도 했어요.
[기자] 5만 원? 5만 원? 한 명이 5만 원을 줬어요?
[탄진툰] 예.“

몇 번을 되물어도 답은 5만 원이었습니다.

◀ I N T ▶ 탄진툰
“(미얀마에 있는) 딸이 '돈 안 보내도 돼요'(라고 말했어요). 딸도 '상관없어요. 아빠. 여기도 돈 있어요. 아빠도 돈 보낼 거 없는데,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발은 아직 낫지 않았는데, 근로계약은 이제 열흘 뒤면 끝납니다.

산재 승인을 받아도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빚을 지고 쫓겨날 걱정을 해야 하는 겁니다.

◀ 차주혁 기자 ▶

산재 신청부터 치료비, 손해배상까지...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들에겐 어느 하나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서러움은 심지어 숨진 뒤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일하다 당한 사고인데도, 우리의 외면은 계속됩니다.

■ 화물이 돼 돌아온 남편

이 침대 곁에서, 아내는 5년 째 선잠을 잡니다.

◀ I N T ▶ 테무르 씨 아내
“계속 20분, 30분 안에 한 번씩 석션(흡입)해야 돼. 가래 많을 때는 10분. 밤새도록 계속 24시간 옆에 있어야 되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테무르 씨가 공장 출입문에 목이 끼여
심정지가 온 건 2022년 1월.

그 뒤로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I N T ▶ 안준환 / 테무르 담당의사
“이제 뇌사 상태이기 때문에 좋아질 수 있는 건 없고, 의학적인 치료는 현실적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요구가 되지 않을까. 평생.“

남편의 사고 소식에 아내는
세 살 아들과 돌배기 딸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내가 바라는 건 남편을 고향에 데려가 계속 치료받게 하는 것.

하지만 귀국하기 위해 남은 산재급여를 한꺼번에 받으려면,
앞으로 필요한 치료 기간이 얼마인지 심사받아야 합니다.

병원측 감정 결과는 남은 수명이 10.75년으로 예상되고,
그 기간 내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인정한 기간은 1년 남짓이었습니다.

공단의 심사회의에는 아내도 참석했지만, 제대로 말할 기회는 없었다고 합니다.

◀ I N T ▶ 테무르 씨 아내
“1분밖에 안 줬어요. 1분밖에. '네네네네' 하고 나가라고, 나가라고.“

왜 1년 뿐인지도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 I N T ▶ 테무르 씨 아내
“'우리 지금 이 상태로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병원 치료비 계속 필요해요' 말을 했는데 '알았다, 알았다'고. '1년만, 1년만 줄 수 있다. 그거 받고 나가라'고. 처음에는 한 달치 말했어요.“

같은 병실에 있던 카자흐스탄 노동자 만수르 씨는 똑같은 뇌사 상태였습니다.

만수르 씨가 받은 치료비는 1년여어치.
그리고 만수르 씨는 재작년 초 귀국했다가, 1년 9개월 만에 집에서 숨졌습니다.

◀ I N T ▶ 테무르 씨 아내
“일할 때는 외국 사람들은 좋고, 이렇게 다칠 때는 필요없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한국 사람이 자기 자식들이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렇다면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지난달 이 공장에서 44살 필리핀 노동자가
자동차 부품을 다듬다 장비 파편에 맞아 숨졌습니다.

2년 넘게 함께 일했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I N T ▶ 양한웅 /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
“ '어떻게 불러요?' 하니까 '어이' 이렇게 부르고, 무슨 일을 하면 '어이 벨트' 이렇게 부른대요. '컨베이어, 컨베이어' 부르고.“

그의 이름은 해럴드.
파견업체 소속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일을 마치면 공장 옆 사무동 1층에서 지냈습니다.

사무실을 기숙사로 무단 변경한 곳이었습니다.

◀ S Y N ▶ 차주혁 기자
“냉장고 한번 열어볼까요? 김자반 같은 게 있네요. 먹다 남은 밥. 실제 여기서 밥을 먹었네요. / [양한웅] 네, 그렇죠.“

해럴드 씨가 숨진 지 벌써 보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병원 안치실에 있습니다.

죽음을 애도할 작은 빈소조차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 S Y N ▶ 양한웅 - 회사 관계자
“[양한웅] 빈소를 차려주고 해야 되는데, 그걸 사용자가 차려야 되는 거 아닙니까? 빈소를.
[회사 관계자] 예, 알겠습니다.
[양한웅] 안 차릴 거예요?
[회사 관계자] 아니 해야죠. 이제.“

지난해 2월,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어선 화재로 실종된
인도네시아 노동자 길랑 씨.

석달 뒤 발견된 시신은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신원불상'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돼 화장됐습니다.

아내 카리스마 씨는 화장된 지 2주 가까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망자를 땅에 묻어야 한다는 이슬람교리가 있지만,
유족에겐 화장을 막을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 I N T ▶ 카리스마 / 고 길랑 씨 아내
“이슬람에선 화장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숨진 뒤에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존중받아야 합니다.“

남편은 국제 탁송 화물에 실린 작은 상자 하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기막힌 현실에 유족들은 절규했습니다.

2024년 이주노동자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화성 아리셀 참사.

2년이 지났지만, 최소 13구의 유해 일부가 여전히 공장 안에 남아있습니다.

◀ I N T ▶ 이숙희 / 아리셀 참사 유족 (중국 국적)
“왜 이렇게 진짜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하는지 진짜 모르겠어요. 우리가 이주노동자라고 이렇게 차별하고 얕보고 이러는구나.“

한국의 일터는 이들의 노동을 필요로 했습니다.

◀ S Y N ▶ 김달성 / 목사·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이주노동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단지 인력으로 보고 법과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서 펼쳐왔습니다. 이주 노동자가 오는 것은 사람이 오는 것이다. 단지 인력이 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치고, 일할 수 없게 되고, 목숨을 잃은 뒤의 책임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 I N T ▶ 테무르 씨 아내
“지금 우리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가족이라고, 나의 아들이라고, 우리 자식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당신을 위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