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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철

신무철(26세)cast 김강우

공장 용접공
달리면서 꿈꾸고 꿈꾸면서 달리는 낙천적 몽상가로 운명적 사랑을 믿는다.
가혹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세상에 대해 주눅들지 않았다.

그는 늘 달린다. 기뻐도 달리고, 슬퍼도 달리고, 생각할 일이 있을 때도 달린다. 자신이 살고 있는 비탈길 언덕도 한달음에 달리고, 상쾌한 강바람을 호흡할 수 있는 강변 자전거 도로도 아침마다 달린다. 달릴 때의 그는 너무나 에너지가 넘쳐서 가난이나 가정의 결함 따위가 미처 그의 발목을 잡을 새가 없다. 그러니까 달리기는 그에게 세상에 주눅들지 않을 용기를 북돋아 주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는 책 읽는 것이 생활이다. 방의 한 벽면이 무철의 밑줄과 메모와 손때가 묻은 책들로 책벽을 이루고 있다. 중학교 때 동생에게 읽을 동화책을 사주기 위해 처음 가본 청계천 헌책방을 아직도 시간만 나면 찾는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책 속에는 자신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까 책읽기는 그가 자신의 가난한 일상을 희망과 꿈으로 풍요롭게 바꾸게 하는 몽상의 공간이다.

늘 달리고 늘 꿈꾸는 무철에게 용접공이라는 직업은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면서 몽상을 잠시 접고 삶의 뿌리를 더 단단하게 박는 현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해서 일해야 하는, 그리고 일 한 만큼 성과가 눈으로 보이는 자신의 직업을 좋아한다. 용접할 때 이는 파란 불꽃이 그의 열정과 닮아 있다.

그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 하지만 첫눈에 반하는 것이 운명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는 연극을 보러갔다가 첫눈에 아버지에게 반해 운명이라고 믿어 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펑크를 낸 주연배우의 대타였을 뿐이고, 그것은 아버지가 맡은 최초이자 마지막 주연이기도 했다. 생활력 없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자신이 언젠가 주연을 맡으면 어머니가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리고 마침 그에게 기회가 왔을 때 기쁜 소식을 형제들에게 너무 급히 알려주려 한 나머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도 끝내 나타나지 않은 어머니를 무철은 아버지와 함께 묻었다.

혼자만의 세상(달리기, 책읽기, 몽상하기)에 침잠해 잔인하고 냉정한 바깥 세상을 잊으려 했는데... 그런데 희야, 그녀가 그의 삶에 끼어 들었다. 그늘이라곤 없는 활짝 핀 꽃 같은 그녀. 저건 거짓말이야. 엄마가 있던 그 시절, 생일케? 위의 밀가루 꽃 같은 거야. 자꾸만 자꾸만 밀쳐내는데도 그녀는 다가온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마음을 열어본다. 산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거구나.

그러나... 역시나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동생 상식은 뒷감당 못할 사고만 치고 불경기의 한파는 무철의 일자리에도 예외 없이 불어닥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 무철은 꿈도 희망도 잃고 달리기도 멈춘 채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과연 그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다시 희야의 꽃같은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강희야

강희야(25세)cast 채정안

사진기자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기꺼이 드러내는 깜직한 바람둥이. 그동안의 연습게임을 바탕으로 무철과의 실전에서 세상 누구보다 솔직하고 엉뚱하고 특별한 사랑을 만들어 간다.

운명적 사랑을 기다리며 홀로 외로이 지내기에 희야의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대문만 나서면 사귀자는 남자들이 줄 서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들을 다 오빠처럼 생각하고 따르기 때문에 바람둥이로 오해사기 딱 좋다. 막연하게 의섭 오빠와 결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의섭에게 기타 남자와 다른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섭과 결혼했을 때의 자신이 가장 축하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과 엄마 아빠의 은근한 세뇌가 화학적으로 작용한 것일 뿐.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 오빠 등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모범생으로 별 굴곡 없이 대학까지 마친 그녀는 한번도 삶의 함정에 빠질 기회가 없었다. 전공을 살려 디자이너가 되는 대신 사진기자를 뒤늦게 지원한 탓에 작년에 입사 실패를 맛보긴 했지만 올해는 어떻게든 보란 듯이 합격해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면 될 일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욕심내는 만큼 챙길 수 있는 만만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가장 낯선 단어 중 하나가 실패다. 세상은 언제나 그녀 편이었다. 원하면 쉽게 정복되었고, 싫으면 헌신짝 버리듯 내쳐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남자를 만났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주제에 그녀를 개 닭 보듯 대한다. 슬슬 승부욕이 생긴다. 내 이 남자를 내 눈 앞에 무릎 꿇리고 말리라. 그리곤 보란 듯이 차버려야지.

처음에는 호기심인줄만 알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 끌리는 것이라고 가볍게 넘기려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끌리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철의 무서운 동생에게 위협을 느끼면서도 늘 그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샌가 그녀, 그 남자에게 끌려가고 있다. 어느샌가 그녀, 상처투성이지만 맑디맑은 그의 영혼을 보고 말았다. 그러나 그 영혼을 곁에 두기란 너무도 힘들다. 그래도 싸움을 계속한다.

희야는 자신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화려하게 보여지는 행복이 중요하다고 여겼었는데 이젠 스스로의 기준으로 행복한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남들 앞에 뽐낼 수 있는 연인보다 세상이 모두 반대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남자가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희야는 무철과의 사랑 앞에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셈법을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호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발랄함과 주어진 현실의 장애를 영리하게 피해갈 줄 아는 유연함으로 무철과의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발랄함과 유연함으로 극복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다. 사진기자와 용접공이 사귄다는 것부터가 신문에 날 일이다. 엄마, 아빠의 그악스런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지만 넘겼나 싶으면 또다시 이어지는 무철의 장애들이 끝도 없다. 게다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상황적으로 자신에게 매달려 자신을 잡아주어야 할 무철이 오히려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걸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사랑의 모험은 한때의 추억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윤의섭

윤의섭(29세)cast 이종수

외과 레지던트
성장기에 지독한 열등감을 맛본 그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깊다. 사람에게서 아픔을 보던 그는 자신의 고통을 직시한다. 그는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모든 부모가 탐낼만한 사위 후보감 1순위. 조건을 보고 결혼하려는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을 신랑감 후보 0순위. 집안도 좋고, 인물도 좋고, 성격도 좋고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명문 대학을 졸업한데다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취미도 멋지다. 운동이면 운동, 악기면 악기 못하는 것이 없다. 생각도 바르고 반듯해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는 편이다. 기부금도 꼬박꼬박 내고 정기적으로 봉사활동도 한다.

희천과 가장 친한 친구로 희야를 친동생처럼 예뻐하고 아낀다. 몇 명의 여자친구를 사귀긴 했지만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인 태도로 대한다는 느낌에 오래 가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꾸밈없이 자신을 대해온 희야가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닫고 희야에게 오빠가 아닌 남자로 다가서려 애쓴다.

그가 괘씸한 것은 무철이라는 게임 상대가 안되는 용접공 녀석도 아니고 그에게 푹 빠져서 자신의 이벤트에 전혀 감동 받지 않는 희야도 아니고 다름 아닌 희천이다.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줘야 할 희천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진 못할망정 무철에게 마음을 주는 눈치다. 동생이 나쁜 길로 빠지려는 데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희천 대신 희야의 바람직한 친오빠 노릇도 하랴, 무철 보다 멋지게 보이는 남자 역할도 하랴. 전도 유망한 전문의 임무도 다하랴 몹시 바쁘다, 바뻐.
강희천

강희천(29세)cast 김정현

독립영화 감독
희야와 무철의 사랑을 유일하게 지지하는 사람으로 사랑에 관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당돌한 소녀 영지에게 다시 마음이 열린다.

희야의 오빠. 법대를 졸업했지만 전공에는 뜻이 없어 일찌감치 길을 바꾸었다. 법대에 진학한 것은 단지 학력고사 점수가 너무 높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던 고등학교 때부터 희천은 사진을 찍으러 전국 배낭 여행을 돌았고 대학 때는 연극 동아리에서 살다 시피 했다. 학점은 썩 나쁘지 않았지만 법관이 되거나 교수로서의 삶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그는 자신의 관심사를 좇아 독립영화를 만들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일을 택했다. 당연히 부모님의 실망이 컸고 집에서의 경제적 지원은 기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 몇 편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형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어서 지금은 선배의 광고 프로덕션에 한 귀퉁이를 얻어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친구들이 의사, 변호사, 교수 등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을 볼 때 희천은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를 보낸다. 자신이 그들과 다른 삶을 선택했다는 특별한 선민의식도, 그들보다 사회적 약자라는 열등감도 없다. 각자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면서 마음으로부터 서로를 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뒤틀리지 않은 열린 마음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다. 동생이 사귀는 무철이 용접공이라는 사실에도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대하며 기꺼이 그의 멘토가 되어준다.

희천의 주변에는 모두 남자들뿐이다. 성별을 불문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희야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여자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여자였다. 전공 대신 연극영화 수업을 찾아다닐 때도, 고시 공부 대신 독립영화를 선택했을 때도 그녀는 평생 그럴 것처럼 그의 든든한 서포터스를 자처했었다. 세상에 대해 어떤 상처를 받아도 그녀만 옆에 있으면 황홀하게 상처가 여물 것 같았는데 그녀는 어느날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같은 과 선배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다. 연락이 끊긴지 불과 한달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다시는 여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막무가내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밀고 들어온 대책 없는 꼬맹이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럭비공은 철없이 무철을 찜해대고 있다. 희야의 도끼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 꼬맹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영지

조영지(21세)cast 김은주

천방지축 아르바이트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불허 맹랑 소녀. 무철과 희야 사이에서, 무철과 희천 사이에서 묘한 삼각관계를 만든다.

주거는 부정확하고, 나이는 물을 때마다 바뀌며,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혼자 벌어 혼자 쓰며 의미심장하게 살고 있는 당돌한 아가씨. 처음에는 23살이라고 주장하지만 희천의 유도심문에 21살까지 깎였으나 이마저도 수상하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같은 이미지다.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며 톡톡 쏘는 말투로 누구에게도 지는 법이 없다. 기존의 질서와 관념과 권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 보는 사람들을 황당하게 한다.

희천과 만난 것은 희천의 사무실 건너편 편의점에서였다. 밤늦게 작업을 마치고 간식을 사러 들른 희천을 보고, 아니 정확히는 희천의 붐 마이크를 보고 반짝 눈을 빛내더니 그 길로 희천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가출했느냐는 질문에 가출이 아니라 독립이라고 주장하고, 아무 남자나 이렇게 따라다니지 말라고 충고하면 직업적 프로의식이라며 한마디도 지지 않는 영지에게 희천은 결국 마이크를 빼앗기고 만다.

마이크를 작업 내내 들고 있는 것이 무척 힘든 일임에도 금방 싫증낼 줄 알았던 영지는 의외로 진지하다. 처음에는 하루만 해보겠다던 것이 이제는 아예 희천의 사무실을 창립 멤버처럼 자연스럽게 드나든다. 사무실 내의 다른 직원들과 술도 종종 마시는 눈치다. 술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면 아무나 옆 사람을 껴안고 뽀뽀를 해댄다는 소문에 희천이 주의를 주자 희천에게도 달려들어 뽀뽀를 쪽 하고는 헤헤 웃는다.

그런 그녀가 무철에게 필이 꽂혔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무철은 희야보다 자신과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사랑은 선착순이 아니다. 비록 자신이 좀 늦게 무철을 만나긴 했지만 희야보다는 훨씬 더 무철에게 잘해줄 자신이 있다. 만나면 5초 이내에 무철을 웃게 만들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에 빠져 있느라 눈치 9단인 그녀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희천의 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신상식

신상식(22세)cast 에릭

무철의 동생
세상이 자신에게 해준 게 없으므로 누구에게서든 뺏어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더 억울해 보이는 여자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의 것을 나눠주려 한다.

이름에 식자를 넣으면 잘된다는 어느 길바닥 점쟁이의 말에 아버지가 무식으로 지을 수 없어 상식이 되었다는 그는 그러나 이름에도 불구하고 영 잘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심지어 사랑에 빠지는 것도 모두 상식밖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무철은 상식에게 이제 형만 믿으라고 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형이 어머니처럼 그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어린 시절의 상식에게 형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형을 보았다. 형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한대 쳐주지도 않고 그냥 묵묵히 집으로 돌아왔다. 상식은 형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상식은 강해지고 싶었다. 형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인문계 고등학교를 고집했다. 성적도 되지 않고 대학갈 생각도 없었지만 형처럼 공고를 가기는 싫었다. 1년을 꿇어 인문계에 진학했을 때 그는 사실 시시해서 패싸움 같은 것에 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다들 자기보다 어린애들인데 상대하는 것조차 폼에 안맞다. 그런데 하필 그가 지나가는 곳에서 패싸움이 일어났고 주동 학생들은 학부모들이 찾아와 모두 무마되고 그 혼자 퇴학당했다.

형에게 그렇게까지 우겨서 들어온 인문계 고등학교였는데 너무 억울했다. 홧김에 패싸움을 주도했던 몇놈들을 잡아다 내 인생 보상하라고 겁을 주었을 뿐인데 녀석들은 다음날 돈을 가져왔다. 주는 돈을 마다하는 바보가 어디 있나? 그 돈을 좀 썼다고 해서 소년원까지 가게 된 것은 더더욱 억울한 일이다. 세상이 이렇게 자꾸만 나를 미워한다면 나 역시 세상을 삐딱하게 볼 수밖에 없다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는다면 내가 알아서 챙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상식은 어느새 전과 2범이다.

무철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지만 상식은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 없다. 오는 여자 안 말리고 가는 여자 안 잡는다. 상식이 세상에 관심을 갖는 여자는 오직 한 명이다. 봉수 삼촌이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말한 그의 생모다. 더 이상 무철에게 엄마에 대해 묻지 않는다. 보나마나 무철은 거짓말을 할 테니까. 생모가 위독하다는 말에 상식은 무철의 이름으로 수십개의 카드를 발급 받아 닥치는 대로 봉수에게 건넸다. 수술비가 부족하다고 해서 사채도 얻어 보탰다. 평소 봉수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에 관한 일이어서 의심할 수가 없었다. 의심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서 건강한 엄마를 딱 한번만 볼 수 있다면 평생 형에게 돈을 갚을 생각이었다. 엄마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을 드디어 봉수가 알려주었고 병원으로 찾아가려 하던 상식은 봉수에게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자신이 봉수에게 철저히 속았음을 알게 되지만 대신 상식에게도 소득이 생겼다. 여주라는 예명의 전직 여배우를 만나게 된 것이다. 출감하고 한동안 무철의 방에서 보던, 유일하게 몇 번을 반복해서 본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었다. 상식은 그녀가 자신보다 어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5살이나 연상이었다. 그 영화를 찍은 지는 벌써 10년이 가까워 온다며 쓸쓸하게 웃는 여주는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 중이었다. 상식은 그녀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주기로 결심하고 여주의 기둥 서방으로 행세 중인 건달과 주먹다짐을 벌여 여주를 인수인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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