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정에게 처음 음식을 가르쳐준 이는 고향 선배였다.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된 그녀는 생계를 위해 식당을 차려서 크게 성공했고, 가난했던 고향 후배 숙정을 주방에서 설거지 등 잔심부름이나 하는 여종업원으로 취직시켜주었다.
타고 나기를 영악했던 숙정은 살갑게 굴며 선배에게서 음식 솜씨를 배웠다. 이후 식당 안주인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서울 부자가 차렸다는 도내의 가장 큰 한정식 집에 들어간다. 이미 베테랑 조리사가 되어 있던 숙정은 손쉽게 한정식 집 주방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세월 공을 들여 40세까지 독신이었던 식당 사장의 아들과 결혼해서 오늘날의 “궁궐”의 여사장이 되었다.
40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지냈으나, 10년 세월 한결 같았던 숙정의 사랑에 감복하여 결국 그녀와 결혼했다.
숙정은 종권 앞에선 음식 만드는 일밖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순박한 여인처럼 행동했으므로 종권이 그녀의 본색을 알 길이 없었다. 종권은 오히려 숙정을 돈 욕심도 부릴 줄 모르고 오직 종권만을 사랑하기 위해 사는 여인으로 착각하고 있었으므로 숙정을 위해선 무엇이든 해주려 노력했다.
일찍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형에게 와서 얹혔다. 형이 독신이었기 때문에 한집에 살면서 형을 보살폈고, 한정식 집에서 일도 도왔다. 형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한정식 집 “궁궐”의 실권을 쥐게 되었고 형 앞에선 고양이 앞에 생쥐 노릇을 했지만 외부에선 공공연히 사장 행세를 하고 다녔다.
형이 독신으로 살다 자식도 없이 죽었으면 깔끔했겠지만, 아쉽게도 형은 뒤늦게 숙정과의 결혼을 결심했고, 형의 결혼을 대놓고 말릴 수도 없는 처지여서, 숙정과 형 사이에 아이만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시아주버니 종권이 독신이었고 남편인 종우가 한정식 집 “궁궐”의 사장행세를 했기 때문에 자연히 “궁궐”의 안주인 노릇을 하고 살았다. 그러다 종권이 숙정과 결혼을 하면서 주방 조리사로 부렸던 숙정을 하루아침에 손윗동서로 받들게 되었고 당연히 “궁궐”의 안주인 자리도 내주게 되었다.
처음엔 민경도 숙정이 순박한 여인인 줄로만 알았지만 숙정은 서서히 남들 안 보는 데선 손윗동서로서 위신을 세우며 민경의 신경을 긁기 시작했고 숙정의 본색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민경은 숙정이 견딜 수 없이 싫어져서 영악한 두 여인은 그야말로 동서지간의 피 튀는 신경전을 펼치게 되었다.
자식이 없는 종권은 조카인 준영을 자식처럼 사랑했고 남들 앞에서도 한정식 집 “궁궐”의 미래의 주인은 준영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했었다. 비록 종권이 숙정과 결혼했지만 숙정이 끝내 임신에 성공하지 못하자 “궁궐”의 후계자는 여전히 준영으로 공식화 되어있다.
한정식 집 “궁궐” 주방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고모인 숙정의 지시대로 충실히 숙정의 아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까지 숙정을 지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고모인 숙정 덕분에 자신의 집안이 생계를 이어 왔고, 본인도 대학까지 나왔기 때문에, 숙정이 시키는 일들을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묵묵히 수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