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자 규모는 정부 집계 530명(정부 공식 인정 피해자와 사망자 합산 추이), 환경보건시 민센터 추산 1,528명(정부 공식 집계에 인정되지 않은 피해자 포함). 지난 2014년, 정 부는 피해자를 1~4등급으로 분류한 후 공식적으로 1,2등급 피해자들에게만 의료비 용과 장례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3,4등급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 한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 피해 원인은 밝혀졌지 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 피해자에게도 등급이 있다? – 소외된 사람들
국가대표 배구선수 출신으로 누구보다 건강했던 안은주 씨. 3년 동안 가습기살균제 를 사용하다 쓰러져 산소 호흡기를 달고도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심각한 상태가 됐 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폐 이식수술을 받고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지만, 수술 전 치 료비용 1억 5천만 원과 폐 이식 수술 비용 1억 2천만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그런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정부의 등급 판정에서 3등급을 받은 것. 3등급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가습기살 균제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인과관계가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앞으로 평 생 먹어야 하는 약 값은 한 달에 186만 원. 건강을 잃은 안은주 씨가 홀로 감당하기에 는 너무 버거운 짐이다.
“저는 그냥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1,2등급 이렇게 나누 면서 가능성 낮음이라고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봤어요. 왜냐하면 내가 딱 그걸 써서 그랬다는 거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저는 기업 이든 나라든 다 원망스럽고 이가 바득바득 갈려요. 소도 아니고 등급을 1등급.. 2등 급 나눠서..”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INT
이런 상황은 또 다른 피해자 신정미(가명) 씨도 마찬가지.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건 강이 악화돼 3년 동안 아홉 차례의 응급실행과 함께 폐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 다. 현재 폐 기능이 약 10%밖에 남아있지 않아 코에 달려있는 산소줄과 돌봐줄 사람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런데도 신정미(가명) 씨가 받은 등급은 3등급. 기 존에 폐질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신정미(가명) 씨의 남편은 건강했 던 사람들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폐에 심각한 병이 생기는데, 원래 폐가 약했던 사 람에겐 그 독성이 더 치명적이지 않겠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같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수증이 없다거나, 기존에 폐 질환이 있었다거나, 피 해 증상이 폐와 관련이 없다는 등의 이유들로 3,4등급 피해자들은 구제 대상에서 제 외됐다. 제작진이 만난 전문가들은 현재의 등급 판정 기준에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 았다. 가습기살균제가 폐에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잘못됐으며, 피 해자들이 5~10년 전 구매한 가습기살균제 용기나 영수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같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3~4등급 피해자들은 사실상 정부로부터 가습기살균제와의 연관성이 부인된 상태다. 때문에 정부의 의료 지원과 피해보상에서도 제외된 채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 홀로 남은 피해자들. 대체 가해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독성을 가진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어떻게 허가되어 전국 각지로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일까? 환경부에 관련 사실을 묻자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 레킷벤 키저‘ 가습기살균제의 원료 PHMG는 카펫 제조시 첨가할 향균제 용도로 허가를 내 준 것 뿐이었으며, 가습기살균제로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될 줄 몰랐다는 답변이 돌 아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두고 너무 무책임한 태도 가 아니냐며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부산에 사는 일란성 쌍둥이 나원, 다원이는 6살의 어린 아이들이지만 안타깝게도 만성 폐질환 환자다. 출생과 동시에 가습기살균제에 노출 됐고, 결국 3개월 만에 문제가 생겼다. 다원이는 폐에 구멍이 나는 기흉 진단을 받았 고, 이듬해엔 나원이가 ‘폐 섬유화증’ 진단을 받고 기도에 튜브를 삽입했다. 누구보 다 뛰어놀고 싶은 나이의 아이들. 그러나 목 한가운데 있는 구멍으로 호스가 연결되 어 있는 현재, 먼 곳으로의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어머니는 모 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제작진은 취재 도중 이상 한 점을 발견했다. 쌍둥이가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하여 사용한 시기는 2012년 1월, 가 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해 강제수거가 내려진 2011년 11월로부터 3개월이나 지난 시기 였다. 이미 강제수거가 내려졌던 제품을 어떻게 사용했던 것일까? 정부는 당시 시판 중이던 가습기살균제 20종 중 독성이 확실하다고 판단된 제품 6종만 수거하고, 다른 14종의 제품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의 이런 안이한 태도로 인 해 어쩌면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마저 피해자가 되었다.
“정부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고 이야기해놓고, 하다못해 등급까지 다 매 겨줘놓고 ‘소송은 너희가 알아서해.’ 그게 저희는 이해가 안가는 거죠. 장관, 국회의 원 어느 분이 피해를 보셨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이게 5년 갔을까요? 그냥 힘없는 서민들이니까 ‘본인들이 알아서 소송하겠지.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그렇게 놔둔거에 요. 4,5년 동안” -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피해자 ooo씨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사람들. 그 마음은 결국 본 인의 손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해쳤다는 죄책감으로 되돌아와 큰 상처를 남겼다. 가 습기살균제 피해가 공식화 되고 5년이 지난 지금,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분통함은 언 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
[PD수첩]은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던 소외된 가 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어봤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구제는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지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