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프로그램이 시청률 40~50%를 장악하던 80년대,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 니다. 딸랑딸랑딸랑~', '괜찮아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등 구수한 입담으로 숱 한 유행어를 제조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감초 개그맨 김학래! 당대 최고의 개그 프로 그램인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뿐만 아니라 수많은 CF에도 출연하며 미 녀 개그우먼으로 유명했던 임미숙! 특히 임미숙은 동료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인기 가 많았는데, 김학래의 열렬한 구애 끝에 이들은 10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결혼에 골 인했다.
“저는 교회를 안 나가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개그맨실에서 엄청 큰 검정 책을 옆에 딱 끼고 와서는 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빠 이거 뭐예요? 했더니 영어로 ‘바이블’, ‘나를 베드로라 불러다오’ 그러면서 매일 저한테 와서 오늘의 설교 말씀은 이거야, 나는 이제 예수님을 영접 했어 계속 그러는 거예요.” ― 임미숙 인터뷰 中
“퇴짜 맞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온갖 유행가 가사가 다 나를 위해 만든 것 같고. 그래서 몇 개월 만에 연애편지도 쓰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귀찮게 했죠. 최양락한테도 얘기하고, 이경애한테도 도와 달라 얘기하고, 그 결정체가 오늘의 우리 부부예요.” ― 김학래 인터뷰 中
하지만 신혼 초부터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결혼 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부터 김학래는 아내의 속을 썩일 때마다 잘못을 반성 하고 용서를 구하는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 둔 각서가 100여 장을 헤아린다. 과거에는 아픈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이것도 연애편지와 함께 추억처 럼 말할 수 있게 됐다는 부부. 여전히 아옹다옹 하며 삶의 재미와 행복을 함께 찾아 가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 연이은 사업 실패에 잇따른 아픔
거리의 낙엽 한 장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가득한 임미숙과 성 실하고 우직하게 ‘마이 웨이’를 걸어 온 김학래. 나이 차이만큼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들 부부는, 각자 바라는 가족의 모습도 많이 달랐다. 6남매 중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 고 자란 임미숙은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을 기대했지만, 장남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와 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한 남편 김학래는 그녀의 기대를 번번이 좌절시켰다. 아내는 남편과 더 많은 것을 함께하기를 바랐지만, 무엇보다 가장으로서 경제 활동 에 충실하고자 했던 남편은 그런 아내의 요구가 때로는 버거웠다. 한편 결혼 초기 부부의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순탄하지 않았다. 피자집, 고깃집, 라이 브 카페 등 도전했던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했고, 김학래가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까 지 연이어 당하면서 부부는 수십억의 빚을 안고 파산 위기에 몰려 힘든 시기를 보내 야 했다. 결국 거듭된 위기로 인해 임미숙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앓게 됐고 방송 활동마저 접었다. 공황장애가 병이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 곁에 있 는 남편조차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고, 가족들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 한다는 사실은 임미숙을 더욱 슬프고 힘들게 했다.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8년 만에 함께 방송에 출연한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진솔한 이야기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 개된다.
“비행기 타는 거는 생각도 못 하고, 어디 갇혀 있는 거는 더욱더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겠는 거예요.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혹시 너 어디 아파? 그 말을 10년 만에 했어요. 혹시 너 어디 아파? 그때 눈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된 거예요. 사람이 어디가 아프면 나 아파 하고 치료를 받으면 되는데, 이거는 마음에서 오는 병이니까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숨기다 보니까 본인은 죽겠어도 남들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 임미숙 인터뷰 中
“나는 공황장애가 뭔지도 모르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 방법을 잘 몰랐죠.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나갔어요. 그걸 이해하고 지금은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제가 카운슬링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는데도, 인간이기 때문에 또 잘 안 되더라고요. 아 내가 또 잊어버렸네, 아내가 아픈데 갑자기 또 소리를 질렀네 하면서 바로 또 후회하고.” ― 김학래 인터뷰 中
▶ 연매출 100억대 사업가로 변신한 부부의 인생 제2막,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
김학래 임미숙 부부가 28년차 부부로 여전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 음을 지켜 냈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맞춰 가려 노력하면서 마 음에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고, 임미숙의 공황장애도 서서히 치료됐다.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위해서도 부부는 쉬지 않고 함께 노력했다. 김학래는 30여 년 간 꾸준히 해온 방송 활동 및 각종 행사 진행, 강연에 부지런히 다녔고, 임미숙은 부 부가 새로 창업한 중식당 운영에 전념했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밑거름 삼아 부부의 삶을 일으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창업한 중식당은, 좋은 음식 재료와 맛, 손님 한 명 한 명의 취향과 특징,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직접 챙기는 임미숙의 살뜰한 노력 덕분에 꾸준히 성장했다. 또한 자체 개발한 메뉴를 홈쇼핑에 런칭하면 서 부부는 연매출 100억 원까지 달성했고, 마침내 10여 년 만에 남은 빚도 다 갚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지금 현재 제가 하는 사업을 보고 성공한 사람, 성공한 CEO라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결국 지금에 와서 성공한 건 아내가 옆에서 힘을 북돋아 주고, 서둘러서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들과 얘기 나누고, 음식을 개발하고 이러면서부터예요.” ― 김학래 인터뷰 中
성공한 사업가로서 인생 제2막을 꽃피우고 있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 아픔을 이겨 낸 부부는 자기를 고집하기보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며 나누고 함께할수록 삶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여전히 남편이 아내보다 드라마에 더 집중해서 아내의 마음을 서운하게 할 때도 있지만, 시련을 딛고 지켜 낸 가족이기에 부부에게 지금의 행복은 더욱 값지다. 옥신각신하면서도 서로의 곁을 든든하게 지 켜 주고 있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인생 스토리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사실 옛날에는 무조건 엄마 편이었는데, 지금 보면 엄마는 따뜻하고 아빠는 이성적이고 서로의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두 분이서 시간을 조금 더 알차고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고, 엄마가 공황장애를 다 치유하시면 제가 서른 되기 전에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 아들 김동영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