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훈의 아버지. 한 때는 조각가를 꿈꾸었으나 시간과 경험이 동영에게 알려준 것은 포기와 체념이었다. 결국 조각가의 꿈을 버리고 목수의 길을 선택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조각가일 때나 목수 일 때나, 나무를 만지고 다루고 숨을 불어넣는 일은 동영에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나무를 어루만질 때면 정훈이 떠오르곤 한다. 상처와 성장의 흔적을 옹이와 나이테로,그 어느 것 하나 지우지 못하고 세월의 풍파를 온 몸으로 기록하고 있는 나무가 정훈과 너무나 닮아서...그러나 동영은 정훈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정훈이 기억하는 미현은 언제나 변함없이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이며, 그런 미현이 정훈에겐 유일한 안식처였다. 처음 정훈이 보통 아이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미현은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영원히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간절한 바램이었을 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지 8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22살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훈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서연은 정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정훈은 그녀를 여전히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정훈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를 보고, 만지고, 느낀다. 달라진 것은 서연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 뿐.. 그것이 정훈을 얼마나 아프게 할지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서연은 죽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죽음 보다 홀로 남겨질 정훈이 더 가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