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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경. 스물 아홉에 결혼, 서른에 공부에 뜻이 있던 남편을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하며 살아 온 그녀. 결혼 6년 차인 그녀에게는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사랑도 없고, 오로지 석 달 전에 날아 온 이혼 서류 한 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여자가 생겼다는 남편의 편지와 동행한 이혼 서류에 분노보다는 미련 때문에 아직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다. 가슴이 알싸해 하루하루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 그렇게, 외롭던 그녀는 우연히 대학 서클의 동창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15년 만에 혁주를 만났다. 문경이라는 여자와 혁주라는 남자. 그냥 외로움이라는 공통 분모가 알싸하게 둘을 끌어 당겼다. 동창이란, 서로 싱싱했던 젊은 날을 기억한다는 것 자체로 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래서 더욱, 허물없이 얘기가 잘 된다. 그녀는 혁주와 옛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의 과거사까지 다 까발리게 되었고, 혁주는 기꺼이 그녀 편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같은 남자면서 자기 남편을 욕하는 그가 좋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혁주가 사별한 전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는 외롭고 쓸쓸했다. 엄마가 돌아 가셨을 때 보다 더. 그래서인지 뭐에 홀린 것처럼 혁주와 가까워졌다. 그러다 혁주 전처의 산소까지 가게 된 그녀. 그녀는 그것이 혁주의 말없는 청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혼 서류에 도장 찍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속초까지 간 둘의 여행. 뜨겁진 않았지만, 그냥 서로 외로움을 달래 줄만큼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혁주와 이곳 저곳 여행지를 돌다, 점쟁이한테 장난으로 궁합을 미리 본다. 둘 사이에 자식 복은 그런 대로 괜찮은데, 떨어져 살아야 그 자식이 잘 된단다. 아무리 장난으로 본 사주지만 불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혁주는 전처와의 궁합이 나빴던 기억이 있다. 
결혼하면 사별수가 있다는 말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황 여사의 반대가 더욱 힘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로 돌아온 그녀에게. 웬일인지 혁주로부터 전화가 없다. 그 동안 혁주는 황 여사로부터 애숙과의 결혼을 종용 당하고 있음을 그녀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먼저 연락을 해 만난다. 문경은 왠지 조금 허둥대는 혁주를 보며, 뭔가 좀 어색해진다는 느낌을 어쩔 수 없이 받는다. 몇 주가 흐르고 이상하게 이번 달에 생리가 없어 확인해 보니 문경은 임신을 했다. 아이가 없어서 이혼 당했다는 주변의 말이 무의식중에 박혔었나 보다. 어째서 임신에 대해 이렇게 준비가 없었는지 문경 스스로 창피할 정도다. 그녀의 남편이 떠났듯이 혁주도 떠난다. 애숙과의 결혼, 그녀의 임신을 혁주는 믿지 않는다. 촌스럽게 남자 잡으려고 그런 방법을 쓰냐고 비웃는 혁주를 보며 그녀는 이미 혁주가 떠났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그녀의 뱃속에선 축복 받지 않는 아이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혁주는 아이까지 지우라고 한다. 그녀는 억울했다. 여자인 게, 아니 인생이란 게,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음이…. 
이 세상에 자기 편 하나쯤 만들고 싶단 욕망이 든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애숙과 신혼 여행을 다녀 온 혁주가 그녀를 찾아 왔다. 인사불성 취중에 찾아 온 혁주는 애숙이 처녀가 아닌 것 같다며 고민한다. 자기는 애숙이 사들인 명품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문경은 소리치고 싶다. ‘너 같은 인간이 그럼 사랑을 기대했단 말이야? 정 떨어지는 인간! 제발 꿈 깨라’. 그녀는 혁주와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남산보다 더 큰 배를 안고 학교에서 쫓겨 난 그녀. 배는 크고, 얼굴은 망가지고, 뱃속 발길질은 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 같다. 퇴직금과 20평 아파트가 재산의 전부. 그녀는 아들 문혁을 낳아 은행에 저금한 돈을 곶감 빼 먹듯 빼먹으며 아들을 분신처럼 키우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도 두산은 지성으로 다가온다. 미경은 그저 두산을 인간성 좋은 제자로만 치부하고 있다. 이 또한 문경으로선 살얼음 걷는 듯 하다. 두산을 좋아하는 혁주의 동생 연주는 문경을 경계하면서도 문경의 처지 때문인지, 오빠가 문경에게 저지른 죄 값 때문인지 문혁의 장난감을 사 들고 자주 다가온다. 그때마다 들리는 혁주와 애숙의 달콤한 사연들, 애숙도 임신을 했다고 한다. 문경은 그 아이와 자신의 아들이 한 형제라는 사실에 오물을 뒤집어쓰는 기분이다. 황 여사는 문경과 두산의 근처를 오가는 연주가 못 마땅해 죽겠다. 혹시나 애숙이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눈치가 보인다. 얼마나 복 덩이인 며느리인가. 연주를 중매시장에 내 놓고 하루빨리 결혼을 서두르고 있다. 
차문혁이 커 갈수록 통장의 곶감이 쏙쏙 빠져 나와 뭔가를 해야 될 때가 왔다. 그녀는 문혁이와 다른 집 아이를 같이 볼 수 있는 놀이 방을 잘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육아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녀의 교사 경력이 많이 도움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방 아이의 아빠와의 염문설로 놀이 방은 문을 닫게 된 그녀. 아이 데리고 혼자 사니까 아무 일도 아닌 것 가지고 크게 부풀려 버리는 여자들이 정말 싫다. 같이 도와줘도 시원찮을 판에, 아무튼 속 좁은 여자들이란…. 
그녀는 깨닫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임을. 미경의 조언으로 아파트를 팔고 강북으로 반찬 집을 얻어 이사를 간다. 어느 정도 반찬 가게 기반을 잡아 돈도 모으며 솔솔 재미가 나려고 하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연주를 통해 들은 애숙의 자궁절제 수술, 그리고 듣자 하니 애숙에게 남자가 있었단다. 거 봐라, 싶으면서도 혁주를 향한 측은함이 생긴다. 불쌍한 인간…. 순수한 인간의 연민이다. 그런데 연주 또한 사기결혼을 당한 거 같다고 울면서 찾아온다. 엄마와 오빠의 죄 값이라고 말하는 연주를 문경은 가르친다. “홀로 서기가 안된 인간이 둘이 서기는 될 거 같아? 너도 역시 결혼은 조건이라고 타협했잖아. 두산 때문이라고 이유 대지마. 선택은 네 스스로 한 거야! 왜들 이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됐는지 모르겠어”. 
황 여사가 팍 꼬리를 내리고 찾아와 문혁이 좀 보고 간단다. 애숙한테 보통 당하는 게 아닌가 보다. 애숙은 분노하는 혁주에게 오히려 당당하다. “니가 뭔데 화를 내? 그럼 나한테 바란 게 돈 아니었어? 우리가 사랑해서 결혼했었던 것처럼 말하지마, 역겨우니까! 넌 우리아버지 돈이 필요했고, 난 우리 아버질 만족시킬 사위가 필요했어. 그래, 물론 나도 모든 것을 과거로 돌리고 다른 여자들처럼 살아 보려고 한때는 노력했다. 하지만, 날 돌게 만드는 건, 너하고 네 어머니야. 내 앞에서 그렇게 뻗대고 서 있지마, 니 무릎을 꺾어 버릴 거니까!” 혁주는 비열하게 미소짓는 희수의 얼굴을 어디선 가 본 듯한 착각이 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에 문경과 갔던 바닷가 호텔은 상상조차 못한다. 더욱이 애숙의 파트너였을 희수의 모습은. 파괴욕구에 미쳐 버린 애숙과 희수는 연주에게도 말한다. 모든 불행은 황 여사와 혁주의 업보라고. 흔들리는 연주를 도와주는 건 두산과 오히려 문경이다. 하긴 재혼인 아들을 초혼이라고 숨겼지. 돈 좀 있다고 며느리 대우를 너무 심하게 하더니…. 사필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