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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영광의 대한민국 경제사.
그 불모지대에서 기적과 전설을 일으켰던 주역들의 불꽃같았던 삶의 조명.
물적자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불모의 땅에서 오로지 우리는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지난 세기 우리의 조상들은 상상도 못 했을 지금을 만들었습니다.
드라마 <영웅시대>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던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그 중심에 있었던 기업인들의 삶을 통해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기업인들이 만들어온 역사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발 도상 과정에서 말없이 희생해온 민초들이 있었고
오랜 기간 군사정부의 강압적인 정책과 그들과의 타협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답보를 거듭하였지만 경제는 기적처럼 성공을 이루어내고, 폐허나 다름없었던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었습니다.
국민 소득 80불에서 시작한 우리의 산업전쟁은 지금 2만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민주화는 그 동안 참았던 봇물을 터뜨리어 제자리를 잡아가며 인권은 신장되었으며 정치 또한 비로소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이르러 이 나라의 경제가 다시 급격하게 휘청거리며 얼어붙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겪었던 IMF의 악몽이 재현될 우려로 하여 온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제 우리는 이쯤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과거를 돌아보고 지난날을 차분히 반추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앞에서 숨가쁘게 뛰었던 그 영웅들을 통해 지나간 날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다시 살아갈 날들을 위하여….

[줄거리]
본 줄거리는 사전 기획단계의 것으로, <영웅시대> 방영이 진행되면서 드라마 내용과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1기 -
천태산.
가난한 농군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로부터 가난한 집안의 맏이가 해야 될 의무에 대해서 일찍부터 끊임없이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땅덩어리는 너무 작고 가족은 많았으며 어린 그의 눈으로 보는 고향에서는 도무지 그가 할 일이 없어 보였다. 어린 동생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과 가출을 한 태산. 그러나 어린 그들을 세상은 받아주지 않았고 아버지에 손에 끌려 다시 돌아온다.
전 재산인 소 판 돈을 훔쳐 친구들과 함께 또 다시 찾아간 신천지, 그러나 당시의 서울, 경성은 역시 그에게 있어 혹독한 땅이었다.
한편, 그 무렵 경상도 지주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일본 와세다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온 국대호는 한때 도박과 술로 세월을 보내며 세상을 관찰하다가
드디어 자신이 할 일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장차 평생의 라이벌이며 친구가 될 두 사람은 경성역 앞에서 우연한 사건으로 만나게 되는데....

- 2기 -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군사 정부는 경제 건설을 제1의 기치로 내걸었고 자신들의 동반자를 찾고 있었다.
이때 국대호는 경제계의 거물이 되어 있었고 군사정부에 의해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 받았다. 그러나 천태산은 아직 그 대열에 들어있지는 못했다.
얼마 후 국대호는 경제인들의 모임을 만들어 군사 정부의 경제정책을 돕는 일선에 나서게 되고 천태산은 박정희와 만나면서 그들의 의기는 투합 된다.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였다.
국토 재건의 구호 아래 세기건설은 제2한강교, 양화교, 영월 제2화력발전소 등을 건설하였고, 나아가 정부의 도움과 차관으로 건설의 쌀이라 불리는 시멘트 공장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것은 지금까지 밖으로만 돌던 세기그룹이 처음으로 자신의 공장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박정희는 천태산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박정희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천태산은 주저 없이 조국 근대화의 선봉장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리고 천태산은 건국 이래 최초의
해외공사인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함으로써 박정희의 기대에 화답한다. 박정희가 계획을 하면 천태산은 충실하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야전사령관이었다.
군사정부 일 년 후 박대철이 세기건설에 입사했다. 박대철은 군사정부에 저항하다가 옥고를 치렀던 명문대 학생회장 출신이었다. 군사정부는 그의 취업을 한때 막았었지만 박대철은 당차게 청와대의 비서들과 담판을 지어 세기그룹에 입사할 수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박대철을 눈여겨본 천태산은 그를 태국 현장의 말단 경리 사원으로 보낸다. 그곳에서 박대철은 죽음과 도약을 동시에 경험한다. 폭도로 돌변한 근로자들이 금고를 강탈하려했을 때 박대철은 혼자 몸으로 목숨을 걸고 지켰고, 그 일을 계기로 현장 책임자가 된 그는 공기를 훨씬 앞당겨 공사를 말끔히 마무리 해놓는다.
그의 나이 약관 25세 때였다. 그 후 박대철은 최연소, 최단기간이란 기록을 갱신하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 훗날 세기건설의 회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해낸다.
국대호는 많은 경제인들을 리드하며 외국의 차관을 끌어들였다.
일본과 더불어 유럽 선진국의 사정에 밝았던 국대호는 울산공단을 계획하면서 박정희의 경제계획을 현실로 옮기는 데 큰 역할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잃은 것이 많았다. 엄청난 세금을 추징 당했고 여전히 부정축재자의 불명예가 씌워져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많은 은행의 주식들도 압수되었고 상당한 공장들도 강제처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경제계의 최대의 거물이었다.
천태산은 갈수록 더 박정희와 뜻이 맞았다. 만나면 형제처럼 스스럼없이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사이였으니 바야흐로 여의주를 문 용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하여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였던 경부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천태산은 불퇴전의 야전사령관이었고 오일쇼크로 나라가 휘청거릴 때 그는 중동 붐을 일으켜
새어나간 달러를 도로 벌어들였다. 오백 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고 외자를 끌어들여 거대한 조선소를 세웠으며 우리 기술로 만든 국산차를 자동차 종주국 미국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 사우디 주베일 항 건설 공사. 세계 1,2위 업체들을 다 물리치고 수주를 따낸 천태산은 전 세계가 실패할 거라며 비웃고 있을 때
국내에서 만든 10층 빌딩 높이의 철골구조물을 바지선에 싣고 만 이천 킬로의 바다를 건너는 기상천외의 기지와 모험으로 20세기 최대의 공사를 보란 듯이 해치웠다.
거기에는 늘 박대철과 김국태, 임대석, 민대영 같은 훗날의 세기그룹을 운영했던 가신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대한은 세기와는 다른 전략으로 성장을 도모했다. 세기가 모험적이고 역동적으로 달러를 벌어들일 때 대한은 안정된 제조업을 기반으로 국내 수출을 주도했고
세기가 거대한 조선소를 세울 때 TV, 냉장고 등 작지만 기술 집약적인 상품에 치중하였다.
국대호는 그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대한비료공장의 건설을 실행에 옮기다가 결정적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른바 대한비료밀수사건이었다. 그것은 비료공장의 건설과정에서 국제적 관례로 있어 온 '리베이트' 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박정희도 묵인했던 일이었다.
일종의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묵인하여 들여왔던 밀수품들. 그러나 언론에 그 꼬리가 잡히면서 대대적으로 몰매를 맞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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