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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조선왕자, 경국지색을 만나다 2004. 10. 05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인물의 이야기를 구상하다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조선시대 왕자가 현재로 와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이름하여 ‘내 남자 친구는 왕자님’. 제목부터 멋지게 나오지 않는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왕자도 궁궐에 갇혀있던 샌님 말고 저잣거리를 활개치고 다니던 한량 버전의 왕자. 그런 왕자가 어느날 4차원의 미로에 빠져 현대 도시 한가운데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경복궁을 찾아가 제 집이라 우기며 입장료 받는 이들에게 호령도 하고, 조선왕조가 사라진 현재의 풍경에 절망해 성균관 유생들을 규합해 왕조 부활을 노려보기도 하고...


그러다 미지왕 소리만 듣고... (미지왕 = 미친 넘, 지가 왕자인줄 알아) 심한 왕자병 환자로 몰려 정신병원 신세까지...

그러던 왕자, 어느날 길에서 경국지색을 만난다. 참고로 왕자의 눈에 비친 현대의 늘씬한 미녀들. 끼니도 못 먹어 배고프고, 옷가지 구할 길 없이 헐벗은 가여운 아낙들일 뿐... 왕자는 후덕한 인상에 오동통한 한 여인을 만나 조선시대 경국지색이라며 사랑에 빠지는데. 한번도 이쁘다는 소리 들은 적 없던 이 여인네, 처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마음이 동하다, 자신이 왕자라는 소리에, 그럼 그렇지 어째 좀 이상하더라... 왕자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멀리하는데 그럴수록 왕자는 권력에 미혹하지 않는 이 여인네를 반드시 조선으로 데려가 세자비에 책봉하리라 분연히 결심한다.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은, 500년의 세월을 건너와서 자신의 인연을 만난 왕자의 사연과 이상한 면이 있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진실해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난 여인의 사연...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염두에 둔 인물은 양녕대군. 조선시대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왕권에 대한 집착 없이 평생을 자유주의자로 살아간 인물. 장남이지만 미친 행세까지 하며 세자 지위를 스스로 버리고 막내 동생 충녕대군이 세종대왕으로 즉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만약 그가 20대에 현재로 시간여행을 왔다면? 만민이 평등한 요즘 세상을 보고 권력무상을 깨닫고, 지폐에 얼굴을 남기고 한글창제로 이름을 남긴 동생이 왕이 되는 게 역사적으로 더 의미있음을 깨닫고 돌아가서 스스로 왕의 길을 포기한 것이라면?

조선에서 오는 인물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야기.. 하지만, 회의 과정에서 ‘역사적인 실존 인물을 현재로 데려와 시트콤의 소재로 삼는건 조심해야하지 않을까.’ ‘괜히 조상님 모셔와 코믹하게 묘사했다가 엄숙주의 잣대에 걸려 비난받지 않을까...’라는 의견에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다른 소재를 찾아보기로...

음... 실존 인물이 안된다면 허구의 인물은 어떨까? 이를테면, 홍길동?


11월 6일 토요일 저녁 7시 첫방송 ‘조선에서 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