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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21세기 조선 유학생... 2004. 10. 20

조선 왕자도 아니고, 홍길동도 아니라면, 조선시대에서 누가 온단 말인가? 기획 회의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대본을 담당한 양승완 작가가 숨겨둔 인물 하나를 쓰윽 꺼내 보였다. 이름하여 조선 시대 한량 양반.

조선 시대 양반하면 어떤 이미지일까? 날 때부터 신분을 보장받고, 글공부를 통하여 과거를 보고, 나랏일에 입문하게 되는 조선 시대 지배층이자 엘리트 아닌가.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 좀 다르다. 나랏일을 걱정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저잣거리에서 어울려 투전판을 기웃대고, 서당보다는 기방 출입이 더 잦은 한량. 과거 시험을 보러가며, 자신의 종더러 대리시험을 봐달라 하고 가짜 환약을 만들어 노름돈을 마련하기도 한다.

얼핏 한심해 보이는 인물이나 이 양반에게도 나름의 철학은 있다. 도전 없는 삶에는 실패도 없는 법. 야망과 욕심을 버리면 안빈낙도의 삶과 여유로운 세상이 저절로 펼쳐질 것이니.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를 논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버리고 유유자적 방랑을 일삼는 한량의 삶을 택한다. 주위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 않고 과거 시험 대신 유랑에 오른 한량 버전의 조선 양반, 난데없이 시간여행으로 현재 서울에 오게 되는데...

혼자 오는가? 아니다. 그의 곁에는 어린 시절 유모의 아들이자 몸종인 머슴 하나가 있었는데... 이 종놈의 인물 됨됨이가 또 범상치 않다.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학문의 깊이가 선비 뺨치고, 홍길동전을 탐닉하면서 길동의 자취를 쫓기를 10여년 한가닥 하는 무예의 고수가 되었는데... 문과나 무과나 어느 과거든 보면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거늘, 타고난 천한 신분은 어쩔 수 없어 양반의 머슴으로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사는데... 그런 그가 21세기 서울로 오게 된다.

조선 시대 양반이 현재로 온다면? 참판을 지낸 아버지 백으로 편히 살던 이 사대부 자제, 현재에 와보니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백수 신세. 양반 이래봤자 알아주는 이도 없고, 이상한 마차가 길을 빼곡히 메우고 시커먼 매연이 하늘을 뒤덮고, 거리 가득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지나는 이곳. 아뿔싸. 이곳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못살겠다. 여기서는... 나 살던 데로 돌아가 양반 풍류나 다시 즐겨야지. 근데 어떻게 돌아가지?

그 양반의 머슴, 현재로 와보니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짚신 한 짝 꼬아보니, 300년 전에 소실된 XX 짚신 삼기 기술의 전승자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둥, 밭매며 부르던 농요를 한 소절 부르니 고서에나 기록된 소중한 민요가 복원되었으니 그를 국보급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둥. 종놈이던 이 나를 이렇게 귀한 몸으로 모시니, 오호라 여기가 바로 신분 차별 없는 이상향이구나. 난 여기서 정붙이고 살아야겠다.

그러던 둘이 한 여인네을 만나 그 집에서 하숙을 살게 된다. 밥먹여주고 재워주는 하숙집 주인이니 바로 주막집 주모가 아니던가. 근데 웬일인가. 조선 양반의 마음은 이 주모의 자태에 설레이기 시작하는데... 어라? 그런데 그 주모는 웬지 종놈에게 시선을 주네?

300년의 세월을 넘어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하는 두 남자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만난 현대의 한 여자 이야기.

D-17 11월 6일 저녁 7시 첫방송 ‘조선에서 왔소이다’

(첫방송 일자가 1주일 당겨졌습니다.
여러분의 엄한 평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짧아졌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여 재미난 첫 회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