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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통신] 향로봉 향로봉아!
날씨가 맑으면 금강산 비로봉이 뻔히 건너다 보인다는 향로봉.
강원도 고성군과 인제군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1293m의 봉우리다.
산 허리에 희뿌연 운해가 감기면 봉우리가 마치 향로처럼 보인다고 향로봉이라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남쪽 시작점이기도 한 이 봉우리는 우리 취재팀에게 그 모습을 보이기가 부끄러웠는지 한 차례 폭설이 내린 후 산아래는 언제 눈이 왔었나 싶게 다 녹아도 올라오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사흘을 기다린 후 드디어 네 바퀴 다 체인을 치고 올라가라는 허락을 받았지만 아직도 길이 얼어붙어 있고, 쌓여있던 눈들이 세찬 바람에 길 위로 나르는 통에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올라가는 길은 조심조심 올라간다 해도 어떻게 저 미끄러운 길을 내려갈까 하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뜩하다. 지금이라도 다시 내려갈까 하는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어떻게 해서 올라가는 향로봉인데 여기서 말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가는 길 도중에 향로봉 꼭대기부터 2시 간씩이나 걸어내려와 잔설 제거작업을 하며 올라가는 병사들을 보니 안스럽기 도 하고 차로 그 길을 올라가자니 한편 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같이 올라가는 카메라 감독님도 30년 전에 이곳에서 군대 생활을 했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눈은 지겹게 온다고 툴툴대지만 30년 만에 다시 찾은 향로봉을 오르며 몹시 흥분되는가 보다. 한창 젊은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아 꽃다운 젊음을 불태웠던 곳이다.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남아라면 누구나 한 시절의 잊을 수 없는 군 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은가. 카메라감독님도 한때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바쳤던 이곳을 30년만에 다시 오며 어찌 그 감회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까마는 마치 그 감회를 얘기하려는 듯 자식 같은 후배들이 눈치우는 모습을, 비스듬히 누운 산자락 나무들에 꽃피운 아름다운 설화를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는다.

하얀 눈이 녹고 저 아래부터 초록색 물결이 서서히 올라오면 예쁜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초록 빛이 어느샌가 을긋불긋 단풍 색깔로 변해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는 향로봉. 이런 향로봉의 아름다운 4계절의 모습을 담으리라.

드디어 향로봉 정상에 당도하니 눈조차 뜰 수 없는 매서운 바람에 쌓인 눈들이 귀때기와 뺨을 마구 때린다. 금강산 비로봉은 커녕 백 미터도 내다 보이질 않는다. 그 와중에 바라다 보이는 '향로봉 이상무'라는 문귀가 새겨진 막사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문 입구에 맑은 물통 4개가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心淸水가 들어있는 물통이다. 즉 병사들이 구타나 가혹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자신들의 손을 씻은 물을 넣은 놓은 물통이다.
 



우리가 밤마다 매맞으며 눈물과 한숨 속에 군대생활 하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이렇게 휴전선 155마일을 돌아 다니면서 우리 군대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일어나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닌 취재팀 6명 전원의 일치된 생각이다.

명랑하시고 자상한 선생님 같은 향로봉 중대장님의 따뜻한 환영과 커피로 얼어붙은 몸을 녹인 후 향로봉 전망대에 올라 보니 뿌연 눈안개 속에 기대했던 금강산 비로봉은 쉽게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듯 자태를 감추어 버리고 실망과 아쉬움 속에 다음을 기약하며 마음 졸이며 다시 사바 세계로 내려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