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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통신] 안개 낀 판문점에서
안개 낀 판문점에서

그 동안 동부전선 동해안에서부터 서부전선 서해안까지 많은 철책선 부대를 돌아다녔지만 판문점을 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봤던 판문점으로 가는 길은 JSA 대대 관할로서 사진 촬영을 절대로 할 수 없다. 가는 길 옆의 논에 파란 벼가 자라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대성동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하는데 대성동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을뿐더러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다고 한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얼마쯤 달린 후 드디어 판문점에 도착하다. 이곳으로부터 아군 경계 시설을 빼고는 어떤 것도 촬영 가능하다고 한다. 자유의 집을 들어가 바깥으로 나가니 바로 사진으로만 봐 왔던 정전위 회담장이 보이고 북쪽으로 판문각이 서 있다. 이곳을 관광온 외국인 몇몇이 북쪽 판문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부산하고 남쪽 병사들은 영화 JSA에서 본 것처럼 병사들이 색안경을 끼고 요지부동 꼼짝도 하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 있다. 반면 북쪽 판문각 앞에는 인민군 병사 한명이 무료한 듯 서 있고 다른 병사 한 명은 그 바로 옆 창을 통해 쌍안경으로 이쪽을 감시하고 있다. 정전 후부터 줄곧 반 세기 이상 이런 숨막히는 긴장의 순간을 이어온 판문점 . 그 회한의 판문점이 짙은 안개 속에서 그렇게 서있었다.

판문점 한가운데에 남북군사 정전위 회담장이 있다. 회담장 내 책상 위 가운데에 마이크가 셋이 놓여 있는데 이곳이 바로 남북을 경계 짓는 군사분계선이다. 회담장 바깥으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약 30Cm 쯤 높이로 콘크리트 턱을 만들어 놓았다. 이 턱을 넘으면 바로 북한 땅이다. 내일이면 53년전 이 한 많은 군사분계선을 설정했던 휴전협정 조인일인 것이다. 우리 촬영 팀과 기자들이 번개 불에 콩 튀겨 먹듯이 북측 판문각과 정전위 회담장 내부를 촬영한 후 바로 근처에 있는 대성동 마을로 가다.

그곳에서는 작년 7월 26일 전술훈련 도중 급류에 휩쓸린 동료를 구하려다 4명이 함께 순직한 JSA경비대대 ‘殺身成仁 民情 4勇士’ 1주기 追慕式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전술훈련 도중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살신성인의 전우애와 투철한 군인정신을 보여준 故 박 승규 대위, 故 안 학동 하사, 故 강 지원 하사, 故 김 희철 상병이 이들 殺身成仁 民情 4勇士 들인데 아직 채 피지도 못한 채 꽃다운 젊음을 바친 이들은 대전국립현충원에서 고이 잠들고 있다.

어디 이들 뿐이랴 동서로 펼쳐진 휴전선 155마일 위에는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젊음을 산화한 병사들이 뿌린 피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전방 각 고지 고지마다 이들이 흩뿌린 고귀한 희생 속에 이 나라를 굳게 지켜 왔는데 그 땅위에서 사는 우리들은 과연 이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과연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기는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추모식이 끝나자 마자 추모비를 부여잡고 오열하는 유족들처럼 하늘도 그 슬픔을 이기지 못했는지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