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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통신] 금강산 건봉사
강원도 동해안 북쪽 건봉산에 있는 고진동과 오소동에서 살아가는 산양을 촬영하려면 율곡부대가 관할하는 민통선 초소에서 출입신청을 하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때마침 내린 큰눈에 통행이 통제되어 초소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건봉사에 가다.

눈이 많이 내려 하얗게 몸단장을 하고 있는 건봉사는 여름이면 숲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야트막한 기와담으로 둘러쳐친 건봉사에는 50여 기에 달하는부도와 탑비가 있는데 원래 2백개가 넘는 부도와 탑비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많이 분실되었고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부도전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우고 있는데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전국 4대 사찰 중의 하나인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고 그 후 도선국사가 중수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말엽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乾鳳寺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곳에서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이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한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3163 칸 전 건물이 소실 되었고 여러 차례의 복원작업을 거쳐 1911년에 9개 末寺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었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휴전 직전까지 2년 여에 걸쳐 한국군 5,8,9,사단 및 미군 제 10군단과 공산군 5개 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격전지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건봉사는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있다.
아직도 드넓은 공터로 남아있는 절터와 돌받침 등 그 흔적만 봐도 이절이 얼마나 번창했던 큰 절이었나 짐작 하고도 남는다. 과거의 영화는 세월과 함께 스러져 갔고 텅빈 공터를 바라보자니 포탄이 작렬하는 소리와 콩복는 듯한 총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규모가 꽤 크며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지만 꼭대기에 오리가 앉아 있어 솟대라 할 수도 있겠다. 이곳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 있다. 능파교라 하는 이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 그나마 형상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주위 풍경과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